바람의 소리

형태가 없는 것을 본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환상 이라고도 부르고 혹은 신기루 라고도 부르지만 어쨌든 그 이면에 따라다니는 근본적인 바램은 형태가 없는 그것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형상을 부여해서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바램은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고 옛 이야기속의 주인공으로 자리잡는다. 그리고 간혹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하나의 사물로 인식이 되기도 한다. 드물긴 하지만.
그러한 바램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사물로 ‘바람’ 이 있다.
바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다. 누군가 바위를 굴린다고 해서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는 것처럼 공기가 기압차에 의해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고 해서 그것을 다른 이름을 부여해서 부른다는 것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독 ‘공기’ 라는 존재의 흐름에 의미를 부여했고 ‘바람’ 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형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게 이름을 부여했기에, 바람은 우리에게 고정된 감상과 형태에 대한 인식을 주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에대해 우리가 익숙해질 정도로.
바람은 생명을 키우고, 기온을 유지시켜 주며, 간혹 모든것을 부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리’ 를 낸다. 바람은 공기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것에 불과하고 공기가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임을 고려해볼 때 그 매질 자체가 소리를 낸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다.(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연과학도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할지는 모르지만. :-)
바람이라는 것이 고정된 형상이 없기 때문에 생각하기에 따라 ‘바람의 소리’는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바람의 소리라는 것은 없다. 바람이 무엇인가에(관악기가 될 수도 있고 대나무 숲이 될 수도 있는) 휘돌아 가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곳에 바람만 있다고 해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바람의 소리 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음색과 음향을 갖고 있을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시작된 사색이 그것의 색과 향을 고민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미소와 고개짓을 유발하기에 충분하긴 하지만.
무작위로 틀던 음악들 사이에서 오늘 잊고 있던 ‘바람의 소리’ 를 찾았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래서 더욱 분명한 이유를 떠올리게 하는 모순된- 슬픔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국 같은 곡을 한시간동안 반복해서 들어야만 했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한번의 동작이면 되었을 것인데도.
다른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과 그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래서 남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고 그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을때 기쁜 것이겠지만.
난 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봤고,그의 행동을 이해했고,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 자신이 납득을 했고,그래서 이젠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참 공교롭게도 연구실 선배가 지금 옆에서 calling you를 틀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공교롭다 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것인지.
듣고있니?
내가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듣고있니? 그리고 이해하니?
슬픔의 원인은 그것이 아닌데...그로인해 떠올린 일에 대해서는 막상 아무런 슬픔도, 기쁨도 혹은 미세한 감정의 흔들림조차 없다는 것이 슬픈것인데 어째서 난 슬픔속에 자꾸 그 일을 밀어 넣으려 하는 것일까? 정작 그 일은 이제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고 있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