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추석 연휴 내내 공지영 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잡고 시간을 보냈다.
운전하랴, 친척들에게 인사 다니랴, 친구들 만나랴. 읽을만한 시간은 그다지 없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잠깐씩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고 오늘 아침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조차도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고 읽지 못했다. 다름 아니라 끝 무렵에 주책 없이도 눈물이 펑펑 쏟아지려는 느낌에 당혹해 지하철 천정에 붙어있는 형광등에 문제라도 생긴양 뚫어지게 위로 고개를 젖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란더즈의 개, 어린왕자, 새들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운다...그리고 또 뭐가 있었더라. 여하튼 책을 읽다가 눈물을 쏟을 뻔 했던 적이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없었다.

누군가를 증오 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 지난 몇 년간 내 삶을 지탱하는 것 중 하나는 특정인에 대한 증오였다. 그랬기에 이 책은 참으로 읽기 어려웠다. 매끄러운 문체, 어렵지 않게 스며드는 어휘. 그런것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잘 쓰여진 문장들이 내게 강요하는 바로 그것이 책을 읽기 어렵게 만들었다. 증오 그리고 용서.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단어와 문장들을 억지로 꾸깃꾸깃 우겨넣으며 그처럼 열심히 읽어 나갔는데, 그러느라 시간을 너무 써버려서 연휴가 끝날 때 까지도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아직 다 먹지도, 먹은 것을 소화하지도 못했는데 나는 일상으로 내던져 지고 말았다. 지하철 역을 나와 연구실로 올라오는 5분동안 나는 빠르게 현실로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길 옆을 덮은 수많은 플랭카드들. 누군가에겐 영어의 자동사와 타동사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일테고 누군가에게 FTA 는 절대로 막아야 하는 인생의 한시적 타도 대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일상들 속에서 나 역시 재치와 욕망이 수식으로 점철된 내 일상을 찾아내야만 했다.

며칠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그래서 책을 덮고 그 내용을 소화시킬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은 소용 없어지고 말았다. 언제쯤 다시금 문장을 곱씹으며 소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을까. 아쉬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