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북로

금요일 아침, 동아리 졸업생 중 한명에게 문자가 왔다. 다름아닌 자기 동기중 한명인 oo 의 아버지께서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부고 알림이었다.

문자를 받는 순간 참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집 아버지께서 무척이나 엄하셨다는 것, 그래서 그 후배는 항상 통금시간 스트레스에 시달렸었다는 것, 딸만 둘인 집이라는 것 등등. 그리고 덧붙여서 내가 아버지를 잃었을 때 청주까지 내려와서는 내 손을 붙잡고 얼마나 힘드냐면서 유독 마음 아파 했었다는 기억도 떠올랐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동안 손은 계속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동아리 졸업생 메일링 리스트에 부고를 알리고 동아리 홈페이지에도 게시물을 올리고...발인은 언제며, 상주는 누구고 등등.

그리고 마지막에 들었던 생각. 부모님을 잃기엔 아직 어린 나이들인데....하는 안타까움.

'살아가다'는 행위 자체가 이별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적어도 이십대의 나이는 그런 이별을, 그것도 가족과의 갑작스런 이별을 경험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닐까. 통증을 호소하시고 병원에 간 후 이틀만에, 그것도 절반은 의식이 없어 가족과의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탓에 그 후배와 가족들은 아직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그랬었지. 예고된 죽음을 맞이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잃었을 때 나 역시 그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었다. 장례의 모든 절차...위로하는 사람들과 그때마다 괜찮다며 답하는 형식적인 인사들 그리고 이제 내가 가장이니까 어머니를 잘 챙겨야 한다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을 끊임없이 충고하는 친지들의 걱정까지. 그 모든 것들이 그저 빨리 지나가 버려서 좀 혼자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혼자 있으면 속 시원하게 울 수 있을 것 같았었다. 결국 장지에서 입관을 마치고 손님들이 식사를 하시는 건물 뒷편에 혼자 앉아 어금니가 부서져라 악물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켜야만 했었던 기억이 날 괴롭게 했다.

어제 저녁 거의 모든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과 친척들간의 갈등을 눈치채고 돌아오는 운전대는 유난히 무거웠다. 생각이 지나치게 외부로 나돌았기 때문일까. 늘 다니던 길을 두번이나 잘못 들어 빙빙 돌아 겨우 성수대교 앞에 도착했다. 그리곤 차마 강변북로로 진입하지 못하고 성수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로 들어갔다. 아마...다시 한동안은 강변북로를 타지 못할 것 같다. 청주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올라오던 날,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정체가 심해서 진저리 쳐질만큼 초조했던 그 날의 기억이 다시금 물 밑에서 떠올라 버리고 말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