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대비
언젠가 지인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는 월급쟁이로 살면 월급과 연금만 열심히 모아서는 노후에 대한 답이 안나오는데, 미국은 젊은 시절부터 성실하게 살면 월급과 연금만 차곡차곡 모아도 노후에도 답이 나오는 것 같다고. 몸 쓰는 일을 하면 조금 다른데 그런 일들은 은퇴후에도 경제적인 부분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그 업으로 small business 를 열어서 자기 사업을 하면서 일반적인 월급쟁이들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지내는 듯 보인다. 월급쟁이로 살 경우에도 경영진 레벨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대단히 여유있어 보이고.
어쨌든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자로 살고자 하는 동기가 아주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성실하게 생활을 한다는걸 전제로,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는 생활을 하면서 사회 활동도 하고, 가족들과도 시간을 많이 보내며 노후를 준비하는게 미국에서는 큰 어려움은 아닌걸로 보인다.
단, 어린 나이부터 미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경우에만.
나처럼 마흔이 넘어 미국에 온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것도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부동산 투자를 한 것도 아니어서 갖고 있는 자산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미국에서 내가 벌어 가족이 생활을 하고, 아이들 교육을 시키고, 내 노후까지 대비하는건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은퇴까지 주어진 시간이 짧기 때문인데, 월급쟁이 처지에 이를 극복하려면 결국 small business 를 시작하거나 회사에서 일을 하더라도 높은 연봉을 받는 루트를 노릴 수 밖에 없다.
내가 속해 있는 industry 의 미국내 top company CEO는 작년에 $7M 이 넘는 total compensation을 받았다. 2년전인 2020년에는 stock option 덕분에 거의 $20M 을 받았고. Top이 아닌 회사들중 CEO의 total compensation이 공개된 곳들을 찾아보면 대략 $0.5M ~ $1.5M 을 오가는 듯 하다. 우리 회사 CEO의 숫자가 궁금하기는 한데 public company 가 아니라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 그와의 저녁 식사 자리 대화에서 흘러나온 조각으로 유추하면 대략 $1M 언저리일 것이라는 예상만 하고 있다.
뉴스 기사의 상단을 차지하는 실리콘벨리 tech company CEO들의 연봉과 비교하면 낮은 숫자지만 사실 실리콘벨리가 특별한 거고, 내가 속한 industry 회사들이 대부분 cost of living이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고 미국 회사 CEO들의 median compensation이 $0.6M 수준이라는 걸 고려하면 오히려 잘 받는쪽에 해당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Channel business 가 중요한 industry라는 걸 생각해보면 CEO의 network는 회사 입장에서 돈을 좀 더 주더라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년 안에 C level officer 까지 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포지션을 은퇴할때까지 지킬수 있다면 아마 경제적인 부분에서 곤란함을 느낄 일은 거의 없어 보이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일이 많은 포지션을 노려야 하느냐도 사실 생각해 봐야 한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에 가족과의 시간이 내게는 오늘 당장의 고민거리니까. 내가 VP로 승진하기 전에 내 보스였던 사람은 욕심도, 능력도 충분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다른 회사의 CEO 자리 제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매번 그런 제안을 거절했는데 이유를 궁금해 하는 내게 한 설명은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까지는 지금보다 일이 더 많아지는 건 피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그런 설명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그런식으로 생각해보지 못했으니까. 승진과 높은 보상을 아이들 때문에 포기하는게 아니라, 아이들이 좀 더 자랄때까지.. 그래서 가족의 품을 벗어나게 되는 시점까지 보류한다는 식의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단순하게 가족 vs 일 이라고만 구분했었기에 나는 승진과 보상을 가족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간혹 뉴스에서 빠른 성공을 거둔 이들이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아직 한창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한다는 이야기를 접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은 했으나 정 반대의 경우가 있으리라는건 생각 못했다. 다름 아니라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승진과 보상을 '미루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생각.
다시 생각이 나와 내 가족에게 돌아오면, 아직 어떤 선택을 할지 모호하다. 분명 아이들은 나와의 시간이 필요한 나이고 앞으로 10년은 그런 시간들이 이어질 것 같다. 그러면 향후 10년을 지금의 위치에서 만족하며 머물러야 하는가? 아니면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그리고 아이들의 삶을 좀 도와주기 위해 승진과 더 많은 보상을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할까?
회사의 상황과 그 안에서의 내 입지를 보면, 어쩌면 올 한해는 그 고민을 하는 시기가 될 수도 있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