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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살아가기는 하지 않습니까?

“다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오스발을 사랑하게 된 율리아나 공주가 파킨스 신부에게 물어본 말이다. 거기에 대해 파킨스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고. “다만 살아가기는 하지 않습니가?” 다만 살아가기는 하는게 사람이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아도 만족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게 바로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다만 사랑하기만 할 수 있을까? 삶의 끝이 명확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의 끝이 명확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을까? ... 가능할것도 같다. 앞을 보지 않고 현재에만 충실한 사랑도 제법 볼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난? 지나치게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그에따른 공포도 짊어져야 하는 법이다. 벨로린은 현재를 모두 알 수 있기에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공포도 느껴야 했지만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그 미지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추가로 느껴야 하는 법이다. 난 앞을 내다보는 사람인가, 아니면 현재를 사랑하는 사람인가?

뒤바뀐 고향

(2001년도에 쓴 글을 옮겨 놓은 것) 며칠간의 짧은 청주 나들이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바로 학교에 들려 몇가지 볼일을 보고 내 오피스텔로 돌아왔을때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며칠동안 제대로 치우지 않아 너저분한 술병들과 쓰레기들. 그렇지만 그와 함게 찾아온 것은 ‘편안함’ 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청주에 가고싶고, 그래서 무작정 내려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했던 때가 있었다. 1995년도...대학에 입학한 그 해에 그랬다. 그런식으로 무작정 수업까지 빼먹고 평일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나 황당해 하는 그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즐거워 했던 적도 있었고. 그때로 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난 그러한 마음의 고향이 뒤바뀌었음을 느낀다. 언제부터였을까. 서울이 더 마음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그건 아마도 하숙집이 아닌 내 방이 생긴 이후이리라 짐작을 해본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소중함이 곧 편안함으로 바뀐것은 아닐까. 지금도 내 방에는 컴퓨터의 냉각팬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다. 그 고요함이 주는 안락함이란. 이 편안함 때문에 난 항상 술한잔의 여유를 느끼고 싶은걸까. 지금 스피커에선 Air on the “G” string 이 흐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곡들중 하나. 무언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읽을 거리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운 시간이다

자기 기만

시간은 누구를 위해 흘러가는가.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왜' 살아가는가. 나는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어서 소중해 하는가? 나는 열심히 일하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는가? 나는 행동하고 싶어서 행동하는가? ... 나는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는가? 어리석은 고민. 즐겁게 걸음을 내딛고 신경쓰지 않으면 그게 바로 춤인 것을.

168통의 편지 그리고 우표 한장

오늘 정말 오랜만에 학부때 친구를 만났다. 한 4,5개월만인것 같았다.마침 휴가라며 찾아온 녀석과 같이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먹으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담소하던 중에 그녀석이 편지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편지 정리를 하던중에 보니 내가 보낸 편지가 참 많더라는 이야기. 생각해 보면 그녀석이 휴학하면서 문득 군에 있는 내게 편지를 보내서는 앞으로 편지를 자주 쓸테니까 답장 안하면 가만 안둔다고 협박했던 일 이후로 참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던 것 같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두배는 더 많은 편지를 보냈던게 분명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와서는 편지함을 꺼내서 군에 있을때 받은 편지들을 다시 읽어봤다. 처음 30분은 빙그레 웃으며 이편지 저편지 골라봤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다 읽을수가 없어서 그냥 몇통이나 왔는지 수만 세어봤다. 모두 다해서 168통. 군에 있는 30개월동안 내게 찾아온 편지의 통수가 모두 168통이었다. 한달에 평균 5.6통씩 받았으니까 일주일에 대략 1.4통, 그러니까 2주마다 3통씩의 편지는 받은 셈이다. 이정도면 제법 많이 받은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남들이 얼마나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하긴 제대하고 2년 반이 지나도록 받은 편지가 10통이 안되는걸 보면 상당히 많이 편지를 받았던 시기인것 같기는 하다. 그때는 왜이리 편지가 안오는지 참 기다려 했었는데. :) 그때는 편지를 쓸때 참 공들여서 썼다. 어차피 그때도 행정병이란 신분상 손으로 쓰기보다 워드로 쳐서 보내는 편지가 많긴 했지만 그래도 내용을 쓸때는 참 공들여서 썼다. 단어 하나를 선택할때도 이생각 저생각 해서 쓰고. 어쩌면 그것은 우표 한장의 위력인지도 모르겠다. 170원하는 그 우표가 그때는 왜그리 귀했는지. 170원이라는 그 돈의 가치때문에 편지 한통을 보낼때 최대한 공을 들여서 쓰려고 했던 것 같다. 요즘이야 쏟아져 들어오는 전자메일때문에 점점 메일 하나를 쓸때 기울이는 노력이 줄어들고 있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 편지는 거의가 A4로 3페이지...

마음이 내키는 대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싶어서 참 여러가지를 해봤다. 살갗을 데일 정도로 뜨거운 물에 한동안 샤워를 하고 다시 찬물에 몸을 식히기를 수차례. 마치 고온 사우나에 다녀온것처럼 피부가 발갛게 달아 올라있는 기분이 좋았다. 그대로 옷을 입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표면상으로는 쇼핑을 하러 간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다지 쇼핑을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물건 사는데 문외한이라 혼자서는 어지간하면 쇼핑을 가지 않는 평소 성격으로 미루어 볼때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밖을 나가고 싶었다는 것 뿐인것 같다. 식당에 들려 저녁을 먹고 오락실에서 오락을 했다. 얼마만에 즐겨보는 혼자만의 오락인가. 다른 사람과 캐릭터를 조종해서 싸움을 하고, 스피커로 흐르는 음악에 맞춰 열심히 발판을 밟고, 미친듯이 드럼의 스틱을 두드려도 봤다. 그리고 신발 가게에 들려 운동화를 사고 며칠전에 지선이에게 편지를 쓴다고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꾸 꾸겨 버리는 바람에 모두 소모해 버린 편지지를 대신하기 위해서 모닝 글로리에서 편지지를 샀다. 그럭저럭 표면상으로 계획했던 ‘쇼핑’이라는 단어에는 충실했을까? 날씨는 참 좋은 저녁이었던 것 같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니 어쩌면 약간은 추운 날씨였는지도 모르지만(겨울이니까) 며칠전의 그 매서운 추위에 비하면 이제 겨울은 모두 끝났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날씨였다. 오히려 약간은 상쾌한 기분이 드는 날씨였을까? 집에와서 방청소를 하고 며칠째 흐트러져 있는 침대 시트를 정리했다. 오늘 오후에 도착한 메일들의 첨부물들을 프린터로 출력하면서 차를 한잔 마셨다. 처음엔 녹차를 마시고자 했지만 왠지 평소와 다른것이 마시고 싶어서 찬장을 뒤져 예전에 집에서 가져온 인삼차 티백을 찾아냈다. 그다지 고급차는 아니어서 맛은 없었지만 평소와 다른 맛이라는 것은 이유가 무엇이든 기쁜 법이다. 그것이 정말로 싫은 맛이 아니라면. 지금은 Ennio Morricone의 영화 Mission OST를 틀어놓고 있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커다란 성당에 와있는 ...

환기를 시키다

무엇인가 귀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무엇인지를 나는 정확하게 구분해 낼 수 없다. 마치 온 몸으로 전해지는 듯한 저 소리는 무엇인가. 약간의 시간이 흐른후에 나는 내가 잠에 취해 있고 그것은 내 전화기의 알람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아침’ 인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몸을 돌리려는데 마치 복싱 선수에게 전신을 두드려 맞은듯이 전신이 쑤셔왔다. 힘겹게 몸을 돌리고 눈을 뜨니 이미 창밖은 환하게 밝아 오고난 후였다. 내 알람은 6시에 울도록 되어 있을텐데 벌써 하루가 이렇게 빨라졌는가 의아하던 난 시계를 보고선 납득을 할 수 있었다. 난 알람을 ‘무시’하고 계속 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밤사이 몸부림을 치면서 잤는지 이불은 뒤집혀 있고 나는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악몽이라도 꾼 것인가? 그래서 이렇게 온몸이 쑤시고 아픈걸까? 꿈에대한 약간의 실마리라도 떠올릴수 있다면 좋으련만 남아있는 것은 통증 뿐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양손으로 얼굴을 수차례 비비고 난 후에 난 오늘이 일요일이고, 따라서 밖으로 외출할 계획이 없다는 것을 떠올릴수 있었다. 왜이렇게 오늘따라 아침이 느리게 진행되는 것인지. 굳이 지금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일요일인데. 하지만 난 마치 무엇에라도 쫓기듯이 억지로 내가 해야할 일들을 기억해 냈다. ‘오늘 해두면 나중에 쉴수 있어’라는 이유를 붙이면서까지. 어제밤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게 나질 않는다. 전화를 끊고나서 침대에 기대서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가 잠이 든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이후의 기억이 불분명 하니까. 그럭저럭 잘 잠이 든 것 같다. 요즘 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앉아 있다가 아침해를 맞이한 적이 여러번 되기 때문에 푹 잠을 자고난 다음날이면 기분이 좋다. 일어나서는 습관처럼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로 전신을 한참 뒤덮고 나니 쿡쿡 쑤시던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은 듯 하다. 간만에 아침을 먹자는 생각에 쌀을 씻으려다 어제 쇼핑하러 나갔다가 쌀을 사오지...

차를 마신다는 것

하루종일 마신 커피가 지금것까지 하면 대여섯 잔은 되는 것 같다. 무슨 카페인 파워로 살아가는 사람도 아니고 도대체 왜이리 많은 커피를 마시는 건지. 나름대로 줄여본다고 묽게 탔는데 생각해 보니까 맛은 묽더라도 몸속에 들어가는 카페인은 줄지 않는것 아닌가. 공연히 더 맛없는 커피를 마시게 됐다는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무슨일을 할때면 참 차를 많이 마신다. 집에서야 녹차를 우려내어 마신다고 하지만 밖에 나와서까지 그런걸 바라는건 사치고 그저 봉지에 들어있는 인스턴트 커피 한잔이면 만족할 수 있다. 우연찮게 원두커피라도 마실 수 있으면 그야말로 만세! 순간 행복이 느껴진다. 차를 많이 마시게 된건 생각해보면 중국에 갔었던 시기에 든 습관인 것 같다. 그전까지는 차라는 것 자체를 그다지 많이 마시지 않았다. 밥을 먹고 나서나 시험기간이면 대학생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건물내 자판기 커피조차도 그다지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에 갔을땐 어쩔 수 없이 녹차를 마셔야 했다. 우선 음식이 너무 기름졌기 때문에 차를 마시지 않고 식사를 마치면 식사후에 속이 느끼해서 하루종일 괴롭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식사시간 내내 틈만나면 녹차를 입에 부어 넣어야 했다. 그리고 두번째는 그때 지냈던 숙소가 참 추웠기 때문이었다. 연변과기대 VIP 기숙사였는데 욕실과 붙어있는 샤워실이 방에 함께 있었다.(대부분의 학생 기숙사는 그저 침대와 책상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말이 VIP기숙사지 온수를 틀면 한참을 뜨거운 녹물이 나오는 곳에서 샤워를 할 수는 없었으며 밤이되면 어지간한 창문따위로 막을 수 없는 추위가 방안으로 몰아쳤다. 내복 2개를 껴입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보온병에 식당의 따뜻한 물을 받아와서 잠들기 전까지 룸메이트 형과 녹차를 우려내서 마시곤 했다. 처음엔 우려낼줄을 몰라 너무 진해서 쓰기까지한 녹차를 마시기도 했었는데 한달을 지내는 동안 제법 내 입맛에 맞춰서 우려내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해서 든 차마시는 습관은 귀국후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