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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주절거림

가벼운 감기 증상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어설픈 새벽 시간에 일어나 서성이고 있다. 아이들 셋 모두 돌아가며 감기로 고생했는데 초기 증상이 비슷한거 보니 이번엔 내 차례인듯. 첫째의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이라 그냥 다들 목감기 앓는거라 생각하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그동안 첫째의 영어 실력 향상을 도와주겠다며 volunteer를 자처해서 매주 한시간 반씩 첫째를 도와줬던 동네 고등학생네 가족을 초대해서 저녁 먹기로 되어 있는데 증상이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아 어렵게 잡은 약속이라. 내일은 재택 근무 예정이니 비타민 잔뜩 먹고 좀 일찌감치 업무 마치고 쉬어볼 예정. 일기예보대로 엄청난 비구름이 지나가고 있어서 마치 음악 공연장 드럼 안에 앉아 있는 기분. 폭우가 내릴때 나무로 지은 집 전체가 울리는 이 경험은 정말 색다르다. 비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것과 다르고 아스팔트 벽을 두드리는 것과도 다르다. 소리가 지붕을 두드리는 비로부터 퍼져서 나무 벽과 바닥을 부드럽게 타고 흐르는데,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야 아무런 느낌 없는 소리와 진동이겠지만 내게는 과할 정도로 이국적이다. 몽환적이고. 비 소리에 잠이 깰 정도면 감기 증상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괜히 일찍 잠들어서 새벽에 이러고 있다. 다음 부터는 심하게 앓는게 아니면 너무 일찍 자는건 지양해야할듯. 그래도 잠이 안와서 맥북을 열었기에 우연히 지인의 페이스북 계정이 해킹당한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고 당사자에게 연락해서 곤란해질 수 있는 상황을 막아줄 수 있었다. 그런김에 근황도 들었고. 피곤한데, 다시 가서 눕기 애매한 정도라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일 아침에 업체 미팅이 있으니 늦잠 자는건 안될텐데.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15분. 아직 3시간 정도 더 잘 수 있으니 누워 보기는 해야 겠구나.  

미국에 온 이유

어제 퇴근 시간 무렵, 독일계 이민자인 회사 동료 한명과 내 사무실에서 업무 미팅 후 잠시 이민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미국 사회에 대해 이런저런 잡담을 했다. 미국 사회에 대한 불만과 독일과의 장단점 비교, 은퇴후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굉장히 넓은 범위의 대화였다. 주로 그 동료가 이야기 했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유럽계 이민자의 이야기를 듣는건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시민권까지 땄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사회에 대해서는 많은 불만이 있는 동료였다. 나보다 열살가량 나이가 많아 이제 몇년만 지나면 early retirement 를 할 수 있는데 자기는 그날만 기다린다는 입장. 59.5세 1초가 되는 순간 펜을 내려놓고 은퇴할 거라나. 그런데 대화중에 갑자기 내게 "넌 왜 미국에 왔냐?" 라고 물어봤다. 너무나 쉬운 질문. 1초도 고민 없이 답이 나갔다. "To make money." 그 동료는 내 답을 듣고 잠시 날 바라 보더니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내 평생에 독일 사람을 폭소하게 만드는 날이 올 줄이야.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되물었더니 더 장황하고 거창한 답변이 나올거라고 생각했다나. 한국 정도의 민주주의와 경제력을 가진 나라 시민권자에, 물리학 박사까지 했고, 삼성전자에서 일했으면서 돈 벌려고 미국으로의 이민을 감행 했다는게 농담처럼 들렸다고. 그런가? 하고 갸우뚱 했다. 하지만 사실인걸. 물론 그 동료가 한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자면 훨씬 길다. 그자리에서 전부 풀어놓을 시간이 없었을 만큼. 하지만 결국 전부 하소연이자 장식일 뿐이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미국 이민 이유는 돈 벌려고 온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미국 이민을 온 이유에 대해서는 넘어갔는데 은퇴하면 어떡할거냐는 질문이 따라 붙었다. 원래 독일인들이 이렇게 수다스러운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프랑크푸르트와 뮌헨에서 만난 독일인들은 말수가 별로 없었는데. 다음에 만나면 이 동료의 고향이 어디인지 물어봐야지. 여하튼,...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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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007 내가 가장 아끼는 카메라와 렌즈는 Pentax KX 와  K50.4 단렌즈의 조합이다. 이 카메라를 아끼는 이유는 딱 하나. 내가 태어나기 직전, 아버지께서 일본 출장을 가셨다가 세상에 곧 나올 내 사진을 찍기 위해 사온 카메라와 렌즈이기 때문이다. 1976년생인 나보다 1년 먼저 만들어진 카메라.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단 하나의 유품이기도 하다.  카메라의 미러에도 흠집이 있고 렌즈에도 얼룩이 있어서 초점 잡기도 어렵고 빛이 까다로운 조건이면 사진의 중앙에서 약간 상단에 지문이 묻은것 같은 얼룩이 남는다. 그래서 정말 좋은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그런 사진을 찍을수 있는 빛 조건이면 항상 저 얼룩이 나오니까.  하지만 나는 그걸 아버지가 남긴 지문이라고 여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기신 물건을 정리하다 내 손에 들어온 이 카메라와 렌즈는 처음부터 그 얼룩이 있었다. 내가 만든게 아니니 아버지 생전에 남은 자국일 수 밖에 없고 당연히 아버지의 흔적이다.  오늘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사람이 그리운데 사람이 싫다. 이런 내게 어떤 조언을 해 주셨으려나. 

주말 아침 티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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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평소보다 이르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좋은 컨디션으로 일어났다. 거실에 내려와 커피를 한잔 내려서 손에 쥐고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한 이스라엘 역사서를 펼쳐 들었는데 웬걸, 둘째가 일어나서 거실에 내려왔다. 어제 놀다가 정신없이 잤는지 잠옷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양말도 신은 상태. 자기도 자기 모습을 보더니 민망한듯 배시시 웃는다. 어이구. 그리곤 곧 이어 첫째도 내려왔고 5분 뒤에는 가벼운 감기 기운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막내까지 합류.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지만 평소엔 늘 깨워야 일어나는 녀석들이 휴일에는 귀신같이 일찍 일어나는건 아마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일듯 싶다. 첫째는 며칠전 먹다 남은 케이크로 아침을 먹겠다고 하고 둘째는 요거트에 꿀을 넣어 먹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하고 큰 아이들이 각자의 아침을 챙기는 동안 나는 막내가 먹을 계란 간장밥을 준비했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과 같이 마실까 싶어서 첫째와 둘째에게 차 마시겠냐고 하니 그러겠단다.  캡슐 커피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는게 간편하기는 하지만 주전자에 물을 넣어서 끓이는 행위가 주는 안온함은 따라갈 수 없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전자가 소리를 낸다. 티백을 찻주전자에 넣고 식탁으로 가져와 아이들이 어제 선물받은 새 닌텐도 게임 이야기를 곁들여 떠들썩하게 아침을 먹는 동안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렸다.  이런 기회를 책을 읽느라 놓칠수는 없는 일.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펴놓았던 책을 덮고 아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시의 게임 이야기 뒤 대화가 자연스럽게 일상에 대한 주제로 흘러갔다.  1. 둘째는 베스트 프렌드인 데릭이 수학을 얼마나 잘 하는지 놀라움을 거듭해 표시했다. 순수한 감탄과 친한 친구의 성취가 자랑스러운 모양. 어떻게 그렇게 수학을 잘하는지 같이 놀라움을 표시하며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학 시험의 성취에 대해 그 부모가 상과 벌을 철저하게 주는 모양. 매 학기 첫번째 평가에서 100점을 맞으면 게임을 새로 살 ...

내 지갑의 범위

오늘 아침 출근길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드리는 문안 전화에서 어머니와 나 사이에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논쟁이 다시 올라왔다. 나는 재산을 물려 받을 생각이 없고, 어머니는 사후에 남는 재산은 내게 주고 싶어 하신다. 나는 어머니께서 있는 돈 마음껏 쓰며 노후를 즐기시기를 바라고 남는 재산이 있다면 어머니와 아버지 이름으로 사회에 환원을 할 생각이다. 반면에 어머니는 내가 받지 않으면 당신 손자들에게 주겠다는 생각이시고. 아침에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은, 내가 상속 받는 문제는 내 생각이 우선이 되야 하는 만큼 내가 끝내 받지 않겠다고 한다면 인정하겠지만 어머니의 재산을 당신 손주들에게 상속하는 문제에는 내가 끼어들 수 없다는 말씀.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어렵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은, 성인이 됐으니 경제적으로 독립하는게 맞다는 내 생각에 동의해 주시고 대학 등록금은 물론이고 지난 25년간 내게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으셨던 분이 손주를 보시고는 마음이 바뀌셨고 그게 자녀를 키우는 내 가치관과 충돌한다는 것. 물론 내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스스로의 판단을 내릴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아이들과 대화를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지만 문제는 어머니께서 한푼이라도 더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안먹고 안쓰면서 생활하신다는 점이다. 좀 넉넉하게 생활하셔도 좋을텐데 그렇게 아끼며 생활하시는걸 보면 속이 미어 터진다. 돈이 없는것도 아니고.. 혼자 지내시는 분이 왜 그렇게 생활하셔야 한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글을 쓰면서 내가 내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머니의 경제적 결정권까지 좌지우지하려 드는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도대체 내가 결정하는 지갑의 범위는 도대체 어디까지가 맞는 걸까. 어머니의 지갑에 대해 나는 권리가 없는건 맞다. 그럼 내 자녀의 지갑에 대해서는 권리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책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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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과 교리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놓지 말고 이어가기를 바란다며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수녀님으로부터 받은 두권의 책.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원래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궁금해서 가볍게 읽고 돌려드리려고 빌려 달라 부탁을 드렸었는데 한국으로 돌아갈때 짐이 너무 많다면서 아예 선물이라고 내 이름을 써서 주셨다.  부담 백배. 읽고 소화할 수 있을까.  처음엔 그저 인쇄물이었는데 선물이 되면서 뭔가 다른 존재가 됐고 의미가 담겼다.   

사람을 대하는 지혜

가까이 지낼수 밖에 없는 이웃중 한명이 같이 시간을 보내기에 참 불편한 성격을 갖고 있다. 그냥 거리를 두고 자연스럽게 안보면 되는데... 이게 그럴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 오늘 아침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는 김에 지혜를 청해서 30여분 말씀하시는걸 들었다. 명쾌한 해답은 사실 없다. 이게 그럴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일흔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의 지혜를 들을수 있었던 그 시간 자체가 좋았다. 살면서 점점 크게 느끼는데, 분명 지식은 내가 어머니보다 많이 쌓았는데 지혜는 어머니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특히 이렇게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비슷하게 흉내도 내지 못하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