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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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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번 프리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다 보면 뉴저지에서 펜실베니아로 넘어가는 다리를 통해 델라웨어 강을 넘는 구간이 있다. 아치형 다리라 중간까지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가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 다리를 통해 펜실베니아로 넘어가는 순간 끝도 없이, 말 그대로 지평선까지 펼쳐진 듯한 숲을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구글 로드뷰를 캡쳐한거라 느낌이 덜한데, 실제로 운전할때 보면 수해(樹海) 그러니까 말 그대로 나무의 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이 넓은 수해가 유지되는 이유가 바로 엄격한 환경 규제 때문이다. 주마다 세부 내용이 다르기는 하지만 큰 방향은 동일한데, 공사를 위해 나무를 자르려면 그에 상응하는 수량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내가 사는 뉴저지는 공사를 위해 나무를 제거하는 경우 지름 24인치 이하의 나무는 지름 3인치 이상의 나무로 1:2 매치시켜서, 그러니까 24인치 이하 나무 한그루 자르면 3인치 이상 나무 두그루를 심어야 한다. 24인치 이상은 3인치 이상 나무 세그루를 심어야 하고. (워싱턴주에 사는 지인의 정보로는, 거기는 30인치 기준으로 최대 6그루까지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단다. ) 그러니까 "울창한 숲" 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하나 내려면 최소한 도로 면적의 몇배에 해당하는 새로운 숲을 조성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나무의 종류까지 따져야 하지만, 어쨌든 새로 도로를 내는 것도 어렵거니와 도로를 낸다 하더라도 최대한 숲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도로가 구불구불하게 날 수 밖에 없는것. (어쩔수 없이 예전에 만들어 놓은 도로를 최대한 잘 이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놓고 보면 미국의 freeway 체계를 확정한 1956년의 Highway Act 는 정말 대단한 정책이었다고 생각된다. ) 미국이 자국의 삼림을 보호하는데만 집중하고 미국 기업들은 다른 나라에서 삼림을 파괴해서 돈을 번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자국의 삼림을 지키는 일 자체는 어느 나라 시민들이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 지구적으로 이...

평화의 집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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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에 있는 평화의 집 수녀원에 매달 다녀오는 봉사를 다녀왔다.  제법 많은 눈이 뉴저지를 출발할때 부터 내렸는데 펜실베니아 고지대에 있는 그곳은 더 많은 눈이 내렸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지나치게 춥지 않아서 도로에는 눈이 쌓이지 않고 들판과 숲에만 쌓였고, 운전해서 다녀오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숲 한 가운데 자리잡은 이곳은 정말 언제 찾아와도 좋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은데.. 내게 주어진 삶의 형태로 보아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

Cho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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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지나면 겨울이 끝날 것 같다.  일기 예보를 보면 2월에도 아직 추운 날이 이어지는 듯 하지만 그런 숫자로 표시되는 계절 말고 그냥 느낌으로 알게 되는 계절을 이야기 하자면 이제 겨울은 끝난 것 같다. 봄이 왔는가? 하면 그건 아직 아니지만서도.  어쨌든 쇼팽의 녹턴이 어울리는 주일 저녁. 와인은 없지만, 겨울을 떠나 보내기에 좋은 선율과 시간이다.   

미국 시민권?

미국 시민권 신청 자격이 된다. 몇해전 한국을 나올때 다 정리하고 나왔다. 자산을 정리하면서 미국 송금을 위해 마지막까지 필요했던 한국 은행 계좌 하나 남겨두고 모든 금융 계좌를 다 정리했다. 금융 계좌 뿐만 아니라 의료보험도, 국민연금도 전부 다 해지했고 전부 다 현금화 해 국세청 신고한뒤 싹싹 비질까지 해서 미국으로 옮겼다.(남겨 놓은 은행 계좌에 아마 몇십만원 정도 있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요약하면 정말 '돌아갈 다리를 불태우고' 나왔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 나중에 아프면 한국에 들어와서 바로 병원 가는 법이라느니, 세금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다 무시하고 법과 절차대로 했다. 지인들에게 '남겨 놓은 건 친구와 가족뿐' 이라고 말 할 정도로. 그 둘은 내가 옮기고 싶다고 옮길수 있는 대상이 아니니까. 무슨 대단한 결심이나 신념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했냐 하면, 가진 자산이 별로 없는 가난한 직장인이라 그렇게 다 현금화 해서 가져오지 않으면 미국에서 초반 정착에 필요한 자금을 댈 수 없었기 때문. 없으면 없는대로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이 셋이 딸린, 직장도 없이 넘어오는 사십대 이민자가 쉬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은 아니다. 거기에 더해 미국에 와서는 바로 직장을 구하지 않고 한동안 가족들과 100%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기에 그 생활비도 필요했고. 종종 아이들 다 키워서 대학 보내고 나면 한국에 돌아갈 거라는 이민자들을 보는데 우리 부부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나온게 아니라 나이 들어서 한국에 들어갈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돌아 갔을 때' 를 위한 준비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제와서 보니 한국을 너무 말끔하게 정리하고 나온 탓에 국적 포기와 같은 큰 일들이 지나치게 쉬워져 버렸다. 조금 과장하면 신청서 한장씩 미국과 한국에 내는 걸로 충분한 상황. 너무 쉬워지니까 고민해보게 된다. 미국은 남은 내 여생을 보내기에 괜찮은 ...

Algeb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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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이 된 첫째는 이제 학교에서 Algebra 수업을 듣는다. 어떻게 보면 인류 문명의 정수라고 볼 수 있는 철학, 그 철학의 한 부분인 논리가 숫자와 관계식으로 표현되어 정리된 지적 유희의 끝판왕인 수학, 그리고 그 수학의 정수라고 부를수 있는게 algebra 대수학 이다. 미국, 그중에서도 뉴저지의 공교육에서 algebra의 기초는 2학년만 돼도 시작하지만 말 그대로 기초일 뿐이고 본격적인 수학적 아름다움을 다루기 위한 준비는 7학년은 되어야 다루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 이외에 집에서 algebra 책을 한권 사서 아이에게 조금씩 가르쳐 주고 있는데 가르치는 속도와 내용 설명을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고민이 많다. 아이가 수학을 부담이 아니라 재미로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자칫 그 경계를 넘어갈까 싶어서 조심스럽다.  문제풀이의 대상이 아닌 논리와 사고의 유희로 즐기는, 인문학으로써의 수학은 정말 재미있는데 어떻게 해야 그 재미를 느끼게 해줄 수 있을런지.

바람 잘 날 없는.

사람 사는게 다 그렇겠지. 라며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머리 복잡한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큰 변화가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경영 회의에서 들었다. 특별한 이슈 없이 모든게 잘 진행된다고 가정할때 빠르면 상반기 늦어도 하반기에는 발표가 날 것 같다. 어느 정도는 예상 했었기에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몇 년 뒤의 일로 예상했던터라 당장 올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에는 제법 놀랐다.  경영 회의가 끝나고 CEO가 자기 사무실로 따로 불러서 작년 성과 보너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변화 이후 내가 받게될 benefit 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이후에도 자신은 계속 CEO로 남아 있을 예정이기에 자신의 senior staff 들도 계속 남아서 조직 변동 없이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는게 그의 바램.  그의 앞에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냥 속으로 승진해서 경영진이 되니 이런 정보도 미리 알게 되고 또 혜택도 주어지는구나 하는 생각만 했을뿐. 상대에게 꼬치꼬치 캐묻는걸 싫어하는 성격 때문인지, 내가 따진다고 별로 바뀔게 없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꺼 버리는 성향 때문인지 모르겠으니 그냥 그 자리에서 말을 할 필요성을 못느꼈다. 내 무반응을 지켜보며 CEO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좀 애매했다. 좀 멋있는 말도 해가며 협상을 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자세한 내용을 물어봤어야 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경험이 좀 더 쌓였으면 내 대응도 달랐을텐데 이제 겨우 넉달밖에 안돼 업무 적응하기에도 벅찬 시간이었기 때문에 경영 임원으로의 태도를 갖출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미팅을 마치고 나와서 지금까지, 주말 내내 머리속은 이만저만 복잡한게 아니다. 남을 것인지, 남아서 약속받은 benefit 을 누릴 것인지 아니면 이 참에 보너스 받아 챙긴뒤 다른 회사로 옮길 것인지 하는. 당연히 옮길만한 다른 회사들은 어디가 있는가 하는 고민도 함께. 이제 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가 ...

낭만, 그리고 기억들

일상은 짜증날 만큼 시시하고, 기억은 저릿할 만큼 아름답다.  와인 한병을 따서 홀짝거리며 과거의 글을 읽어보는 시간.  쓸쓸함이 낭만이던 시절, 어설픈 한편의 글 조차도 영혼 없이 두드리는 지금의 글 보다 몇배는 더 아름답다. 쓸쓸함은 낭만으로 치환되고, 낭만은 문자로 새겨지던 시간들.  이제는 쓸쓸함은 여전하나 낭만은 없고, 간신히 끌어 모은 낭만조차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번거로와진 건조한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