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블루제이

블루제이는 남서부를 제외한 북미 대륙 대부분에 넓게 서식하는 텃새로 뉴저지에서는 흔히 보인다. 예쁘기는 한데 자주 보다 보니 점차 별 신경 안쓰게 되는 그런 흔한 텃새. 그런데 막내는 블루제이를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에 나오는 그 파랑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블루제이를 보면 행운이 뒤따를거라고 믿는다. 오늘 아침 학교 오케스트라 연습을 위해 일찍 데려다 주는 차 안에서 내가 오늘이 벌써 5월이네 하고 지나가는 말을 던졌는데 막내가 4월에 블루제이를 다섯번이나 봤으니 이번달에는 우리 다섯 식구 모두에게 좋은 일이 한가지씩 생길것 같다는 말을 했다. 아이의 말에 손뼉까지 쳐 주며 공감해줬다.  그래, 오월에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좋은 일이 한가지씩 꼭 생길거라고 믿어보자.

심란

첫째의 상태가 다시 나빠지고 있다. 그 동안은 컨디션의 기복은 있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 우상향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최근엔 우하향 하고 있다. 지난 반년은 컨디션이 나빠도 짧게 끝내고 다시 회복이 되었다면 지금은 회복이 되지 않고 계속 나쁘지고 있는 모습니다.  어느정도는 기복이 있으리라는건 알고 있었고 각오도 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경험한 것과 달리 깊고 거대한 down turn 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무겁다.  어제부터 아내와 저녁 묵주기도를 시작했는데 기도의 힘이 아이를 잡아줄 수 있기를.

첫째의 연극 무대, 그 기적같은 시간

어제 저녁, 그동안 고생하며 준비한 첫째의 연극 무대가 있었다. 무대 의상 준비팀이었던 아이는 그동안 매일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아이들과 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시간을 보냈고 심지어 공연 전날 마지막 dressed 리허설을 마친 뒤 디렉터가 의상을 수정하라는 폭탄을 던져서 공연 당일 무대에 배우들이 서기 직전까지 제대로 밥도 못먹고 의상팀 아이들과 함께 의상 수정을 해야 했다. 공연 당일. 첫째는 일찌감치 학교로 다시 갔고 나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은 공연 시간에 맞춰서 다 함께 이동했다. 꾸준히 연극/뮤지컬 팀에서 활동해온 둘째 덕분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공연은 여러차례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고등학생들의 연극은 중학교까지와는 달랐다. 공연 수준도 무척 높았지만 중학교까진 선생님들이 주도가 되어 진행된다면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모든걸 책임지고 진행했다. 선생님들의 역할은 안전관리 정도. 연출과 연기 지도는 물론이고 포스터 제작을 포함한 각종 홍보, 무대 장치 제작, 의상, 음악, 음향효과 및 조절, 무대 배경으로 쓰이는 영상 제작(무대와 연계시켜 자연스럽게 만들었는데, 마녀가 연기와 함께 새로 변신해서 날아가는 장면-실제로는 연기에 배우가 몸을 숨기고 연기에 가려진 스크린 부분에서 새가 나와 화면 너머로 사라지는 연출-은 정말 감탄을 했다)을 비롯 티켓 판매부터 공연 운영까지 모든걸 아이들이 진행했다. 심지어 브레이크 시간에 음식과 음료를 판매하는 팀도 따로 있었다. 티켓은 현장 구매도 가능 했지만 사전에 온라인으로 예매를 하지 않으면 좌석을 미리 지정할수 없기 때문에 미리 티케팅을 했다. 공연은 총 네 번, 목/금요일은 한번씩, 토요일은 두 번 하는데 공연마다 좌석이 거의 다 찰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지역 소식지에 광고가 올라오기도 했다. 첫째가 다니는 고등학교에는 몇 개인지 다 알기 어려울 정도로 클럽이 많은데 각 클럽들의 활동 수준이 높다. 영상 제작을 하는 클럽도 있고 방송 촬영을 하는 클럽, 비즈니스 경영/마케팅 클럽, 음악 등등 정말 수없이...

벽난로

잠이 깼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다시 잠들기엔 어정쩡한 시간. 새벽은 아니지만 이른 아침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오늘이 토요일이니 평소 같으면 침대에서 나와 이래저래 짐 챙기고 자전거를 차에 실으며 분주하게 주말 아침 라이딩을 준비했겠지만 생각보다 이른 추위와 얼마 전부터 말썽인 오른쪽 무릎은 추운 날씨에 나가서 라이드 하는 걸 주저하게 만든다. 그대로 누워서 휴대폰을 보며 한참 시간을 보내다 문득 벽난로나 미리 지펴 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이 일어나서 거실에 내려왔을 때 활활 타고 있는 벽난로와 함께 훈훈한 거실이 기다리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유일한 문제라면 뒷마당 장작 거치대에 있는 장작을 거실로 옮겨야 한다는 귀찮음인데 그 정도야 충분히 감수할만했다.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나오니 고양이들이 반긴다. 하지만 거실을 데우려면 고양이들과 놀아주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 길로 뒷마당으로 나가 장작 거치대에서 장작을 주워드는데 문득 하늘을 보니 제법 날이 밝아온 뒤였다. 사진을 찍을까 했는데 폰을 안 가져왔다. 서둘러 정작을 한 아름 끌어안고 거실로 돌아와 불을 지폈다. 벽난로에 장작과 스타터를 쌓아서 불을 붙이고 어둑어둑한 거실이 벽난로에서 나온 붉은빛으로 조금 밝아지는 걸 확인한 뒤 서둘로 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타오를 것 같은 선홍빛 하늘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낮게 내려앉은, 하지만 서로 다른 두 무리 구름의 결이 잘 보일 정도의 빛과 분홍색 아침 햇살이 고운 하늘이었다. 사진을 찍고 잠시 서서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다 집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겨울 초입이라고 하나 얇은 옷 한 겹 있고 서있기에 11월 중순의 아침 추위는 만만치 않다. 거실로 돌아오니 활활 타오르고 있는 벽난로가 반기고 있다. 이제 잠시 시간을 주면 훈훈한 온기가 돌겠지. 거실 불을 따로 켜지 않고 냉장고에서 아내가 만들어 둔 에그 샐러드를 꺼내와서 옆에 놓고 앉았다. 이제 가족들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 따뜻한 벽난로의 온기와 불빛이 일렁이는 어둑한 거실...

11월. 와인 & 치즈케이크

이제 시차 적응이 쉽게 되는 나이가 아니다. 지난 3주간 출장으로 아시아를 돌아다녔는데 시차에 완전히 적응하는데 2주 정도 걸렸으니 돌아와서도 그정도 걸리겠지.. 하는 중. 계속 며칠째 초저녁에 기절했다가 새벽에 깨서 그대로 밤을 지새고 있다. ...하여 오늘은 그냥 와인을 한병 열어서 아내가 만든 치즈케이크를 안주 삼아 한잔 하는중. 진판델 와인을 곁들인 아내의 치즈케이크는 온 세상에서 나만 아는 천상의 맛이다. 아내는 술을 안마시고, 이 치즈케이크를 선물받은 사람들은, 그 수가 많지도 않지만, 술 안드시는 수녀님들이거나 술 마시더라도 나 같은 와인 매니아가 아니라서. 특히나 진판델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아니다. 뭐, 살면서 "나만 아는 끝내주는 맛"이 있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즐거운 일이다.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면 함께 진판델 와인을 따고 엄마의 치즈케이크를 먹겠지. 11월이 되면 1년이 끝난 기분이 드는걸 보면 이제 미국 문화에 어지간히 적응했나보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뒷마당에 말리고 있던 장작을 정리하고 벽난로를 개시해야겠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와인에 좀 취하는게 먼저.

공장에 대한 기억

출장으로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를 돌아다니고 있다. 지금은 캄보디아 프놈펜. 오늘 여기 업체 두곳을 만나고 내일 아침 일찍 홍콩으로 출발할 예정. 이번 출장중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 회사에 놀러갔던 시간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청주에 있는 삼화전기에서 제법 오랜 시간 근무하셨는데 콘덴서가 주력 아이템이었던 회사였다. 요즘처럼 회사 출입 통제가 엄격하던 시대는 아니어서 아버지를 따라 생산 라인에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그 때 콘덴서를 생산하는 제조 공정이 40년이 더 지난 지금도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방문했던 공장들 중 내 기억속에 남아 있는 자동 제조 공정(정확하게는 콘덴서 불량을 걸러내는)과 동일한 설비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가 있었고 그 설비가 동작하는걸 지켜보면서 기억이 과거로 날아갔다. 설비들로 가득찬 생산 라인, 설비들이 동작하며 내는 소음으로 대화하려면 약간 소리를 질러야 하는 장소들, 반도체 방진복 까지는 아니지만 어느정도의 클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작업자들까지.. 내 기억속에 남아 있는 1980년대 삼화전기의 생산 라인이 그대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버지께선 당시에 설비를 2종류나 개발해서 회사에서 상을 받기도 했었는데 이런 공장들을 심사하며 다니는 입장이 되어 보니 아버지는 참 일 잘하는 직원이셨겠구나 싶다. 그만큼 대가를 받으셨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엔 많았던 이런 기초 제조업 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테니 아버지와의 기억이 묻어 있는 이런 생산 라인은 동남아시아를 가야 만나볼 수 있겠구나 싶다. 아직 살아 계셨다면 콘덴서 제조 라인에 대한 이야기로 한참 즐겁게 만들어 드릴 수 있었을텐데.

인터뷰

어제 저녁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 한곳과 인터뷰를 했다. 지난주에 Recurting company 한 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자기들이 현재 어떤 회사의 경영진을 리빌딩 하는 일을 의뢰받아 하고 있는데 내 커리어와 업무 역량이 잘 맞는것 같은데 한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했다. 마침 여러가지로 현재 직장에 대해 생각이 많던 터라 기회가 참 공교로왔다. 그래서 한번 만나보기로 하고 어제 그 회사의 HR VP와 전화 통화를 했다. HR VP와의 전화 인터뷰는 당초 예상했던 30분을 훌쩍 넘겨 한시간동안 진행됐다. 결론적으로 서로 원하는게 달라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이 한시간의 인터뷰는 그동안 미국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 회사에서 승진해서 경영진이 되었기에 경영진 채용을 위한 인터뷰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이 내게는 경영진 채용을 하는 회사와 갖는 첫번째 인터뷰였다. 지금까지 내가 인터뷰라 함은 항상 내가 무언가를 답해야 하는 자리였다. 나도 뭔가 물어보기는 했으나 내 연봉이나 회사에서 주는 베네핏 같은 패키지에 대한 질문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많은걸 물어봤다. 회사의 매출과 이익율, 주요 고객과 supplier들이 누군지, 중장기 전략적 방향, 제품전략, 왜 이번에 조직 개편을 하고 왜 특정 포지션이 만들어졌는지 등을 물었으며 설명을 듣다가 나라면 이렇게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에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설명을 듣다 보니 이 회사의 개발 리소스가 프로젝트 수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인력 확충 없이 생산 파트너와의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의 효율성을 개선시킬수 있는지 내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 회사의 상황에 맞춘 아이디어를 이야기 했고 그럴 경우의 문제점에 대해 질문도 받고 토론도 했다. 마치 인터뷰를 보는게 아니라 컨설팅을 하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회사가 나를 평가하는것 뿐만 아니라 나도 회사를 평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인터뷰마다 당신들이 왜 나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