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그리고 환절기에 대한 짦은 생각
이곳, 미국 남부에서 환절기는 언제일까.
한국과 기후가 비슷한 조지아주라고는 하나 아무리 빨리 지나가더라도 계절이 바뀌기 전 가을 냄새가 먼저 나곤 했던 한국에 익숙한 내게, 이곳의 환절기는 낯설고 어색하다. 보이는 풍경은 여름과 아무 차이 없는데(심지어 하늘 빛깔 마저도) 기온만 갑자기 큰 폭으로 떨어졌다. 보이는 풍경에서 차이를 찾자면, 끈질기게 사람들이 머물던 아파트 수영장에 지난 며칠동안은 아무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정도? 아이들마저 사라진 그 수영장은 확실히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게 전부. 아직, 세상의 모습은 바뀐게 없다.
남들은 어찌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을의 시작을 항상 냄새로 인지했었다. 문자 그대로의 '냄새'가 아닌, '느낌' 에 좀 더 가깝다고 해야 하는 그런 어휘. 하늘빛, 이슬맺힘, 나뭇잎이 잃어가는 푸르름, 차가와진 공기 그리고 문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약간 들뜬 사람들의 웅성거림.(아마도 무더위가 끝났다는 것을 반기는). 어휘력이 더 좋은 누군가는 좀 더 어울리는 표현을 찾을 수 있겠지만 난 그냥 그 모든 느낌을 가을 냄새, 향취.. 라고 뭉뚱그렸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가을의 시작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향취도 없이 갑자기 계절이 바뀌어 버렸다. 뭔가, 정신을 차리고 봤더니 세상이 바뀌어 있는 그런.
오늘 오후 늦게 근처 리쿼샵에 들려서 싱글몰트 위스키를 한병 사왔다. 그리고 이사 오면서 꽁꽁 넣어놨던 위스키 잔을 꺼내 조금 전 잔을 채웠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술 주정에 가깝다는 이야기. :-)
위스키는 혼자 마실때 가장 좋다. 코 끝으로 향을 맡고, 입에 살짝 머금었을 때 혀 끝을 타고 찌르르 올라오는 그 느낌을 즐기고 마지막 목넘김에 집중하려면, 대화는 방해만 될 뿐이다. 특히 무엇보다도 싱글몰트 특유의 풍성한 향은, 그 자체만을 위스키 잔에 담아 코 끝으로 즐겨야 할 만큼 그윽하다. 시끌 벅적한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제조한다고 이거저거 섞어 버리거나 하는 건 위스키에 어울리는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위스키는 사색을 위한 술이다. 그리고 나는 해마다 가을이면, 싱글몰트에서 한병을 골라 한번에 한잔씩 몇주에 걸쳐서 그 향과 맛을 즐긴다. 혼자, 지금처럼 생각을 다듬으면서. 단풍잎 색이 가을에 변하듯, 나 자신이 가을에 변하는 하나의 행동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어제 그리고 오늘, 연달아 가을을 느꼈다. 조건 반사처럼 위스키의 향이 생각이 났고 이 밤, 이렇게 나 혼자 조금은 낯선 가을을 나름대로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