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그리고 카풀

예전에 한 블로거와 서로 백링크를 걸어가며 수차례에 걸쳐 토론을 했던 일이 있다. 주제는 대형 쇼핑몰의 노동자들이 파업하면서 해당 몰의 운영이 중단되서 입점해 있는 다른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 용인되어야 할 문제이냐 라는 것이었다.

결론을 내리진 않았으나 그 토론 이후에 인식하게 된 사회 문제가 있는데 바로 "끝에 몰린 사람이 너무나 많다" 는 것이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절벽에 걸려 있는 자동차처럼 조금만 움직여도 추락할 것 같은 그 상태 때문에 탈출해야 하는 그 자동차에서 도리어 꼼짝도 할 수 없는 그런 '끝'에 몰린 사람들. 그들에게는 객관적으로 무엇이 올바르냐에 대한 토론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추락하느냐 아니냐만 중요할 뿐. 그들에게 객관적 정의는 사치다. 딴은 그렇다. 생존 앞에 무엇이 우선할 수 있는가.

그런 끝에 몰린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목청을 높일뿐 변화는 없는 사회의 경직성이 같이 심해지고 있다. 올바름을 주장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일이다. 진짜 어려운 것은 그 끝에 몰린 사람들과 어떻게 "실질적인 대화" 를 나누느냐다. 나는 솔직히 답을 모르겠다. 자신도 없고.

오늘 아침, 여기 미국 언론에서 이번 카풀-택시 사태를 예로 들면서 한국에서는 스타트업이 온갖 규제와 사회의 저항으로 어려움이 많으니 혁신적인 아이템으로 사업을 할거면 차라리 한국을 떠나서 하라는 식의 인터뷰로 마무리 되는 칼럼을 낸 걸 읽었다. 관점이 틀렸다고 본다. 그건 혁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저항이 문제인게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어려운거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매달려야 해서 다른 길을 쳐다볼 여유도 없었던.. 끝에 몰린 또 다른 노동자들의 이야기라서 어려운거다.

택시 기사들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공유 경제로 나가는 분명한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들에게 요구하는 사회적 정의가 마치 절벽에 매달린 이들의 손가락을 억지로 떼어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