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snow in NJ
엄밀하게 따지면 미국 북동부 지역으로 열심히 출장을 다니던 시절, 두번인가 세번 폭설을 경험하기는 했다. 그 중 한번은 뉴욕에서 일주일이 넘도록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1미터 가까이 온 폭설로 인근 지역의 교통이 완전히 마비가 되어 그 주 내내 잡혀 있던 여러 비지니스 미팅들이 모두 취소가 된 탓이었다. 하루종일 그리고 일주일 내내 멍하니 호텔이 있기도 애매했던 탓에 중간중간 눈이 그치면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센트럴파크를 나가 음악을 들으며 걸어다녔는데 어쩔 수 없이 염화 나트륨에 푹 절여진 눈 슬러지를 밟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 시기 센트럴 파크를 걸으며 신고 다녔던 구두는 그렇게 거기서 수명을 다 했다. 그 때 경험한 눈은 무색무취 했다. 혼자였고, 할 일도 없었고, 해야 할 일도 할 수 없는.. 그저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만이 하루종일 벗이 되어 주던 그런 눈 이었다. 무료했으나 무료함이 가져온 여유를 즐길 마음은 주지 않던, 아무 감흥 없던 눈 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미국 이민을 온 이후 처음으로 폭설이 왔다. 몇해 전 경험한 그런 눈은 아니었지만 꼬박 하루하고 반나절을 내린 눈은 중간에 잠깐의 멈칫거림도 없이 줄기차게 내렸고 불과 서너시간 만에 제설차가 미처 다니지 못한 동네의 좁은 도로들의 흐름을 굼뱅이보다 못하게 마비 시켰다. 1미터가 오나, 그 절반이 오나 어차피 모든게 멈추기는 매 한가지. 거기에 더해서 이번엔 내가 책임지고 치워야 하는 집 앞 도로와 주차장 진입로가 있다. 구경꾼의 입장에서 졸지에 당사자가 된 상황. 하얗게 입김을 뿜어 내며 힘을 쓰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요즘들어 간혹 사는게 참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뭐 이리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지. 한국이나 미국이나 삶의 치열함은 단 1의 차이도 없다. 관점에 따라, 그리고 지향점에 따라 어느 한쪽이 더 나아 보이는 상대적인 면도 분명 있지만 최소한 한가지는 동일하다. 멈추면, 추락한다. 한국에서 러닝머신이라고 불리는 treadmill 이 원래는 죄수들 대상으로 사용하던 형벌의 수단이었던 것 처럼, 내 의지와 관계없이 멈출 수 없는 발판이라는 것은 치열함을 지나 형벌에 가깝다. 삶은, 내가 멈추고 싶다고 해서 멈출 수도 없고 그 길이 평온하지도 않은, 그러니까, 형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 날, 주차장 앞 눈을 치우다 그 생각이 또 들었다. 내가 뭐 하자고 지금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거지... 하는. 제대 후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눈 삽질은 보나마나 심한 근육통을 수반할테고(실제로 이틀 고생했다) 줄기차게 내리는 눈은 숨이 턱에 닿도록 힘들여 치우고 또 치워도 양 옆으로 높이 쌓여만 갈 뿐 어떻게 해소할 방법이 없는 하얀 괴물 같아 보였다. 삶이 참, 귀찮다는 생각. 살려면 움직여야 한다. 한명이 포기하면 나머지가 죽도록 고생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명이 동시에 올라서서 틀을 돌려야 했던 최초의 treadmill 처럼 얽히고 설킨 우리의 관계망은 내가 절대 발을 멈추도록 놔두지 않는다.
아이들과 썰매를 타며 깔깔거리고, 집에서 온 가족이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따뜻한 색의 조명으로 밝혀져 있는 거실에서 차를 마시는 그 순간을 위해 사는 걸까? 그 모든 순간이 혹시 treadmill의 연결된 발판인 것 아닐까? 고된 노동의 순간에 어울리지 않는 고민일 수도 있지만 눈을 밀고 걸어 다니는 그 시간에 나는 순간의 즐거움이나 행복과 별개로 내가 사는 이유에 대해 수없이 의문을 던졌다. 뭐, 눈 더미가 답을 해 줄 리는 없지만.
다시 며칠이 지났고 세상을 뒤덮었던 눈은 이제 길 양 옆에 거대한 흔적처럼 눈 더미들을 남겨놓은 채 물러갔다. 12월의 느긋한 일상으로의 복귀. 그렇지만 여전히 궁금함은 남는다.
신은(당신이 믿는 신의 존재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것이 대자연이든, God 이든) 왜 세상을 만들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