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모습으로 내린다

 

[Livingston @2021 / Galaxy S10+]

지난주부터 일주일째 계속 눈이 내리고 있다. 일주일동안 쉼 없이 내리는 건 아니지만, 눈을 치우고 돌아서서 커피 한 잔 할 여유만을 허락하고 퐁당퐁당 내리고 있으니 눈삽을 들고 씨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줄기차게 내리는 것과 진배 없다. 그리고 오늘 아침, 커피를 한 잔 내려 테이블에 앉아 내다본 창문 밖으로 예보에 없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후에 2~3시간 가볍게 온다고 되어 있었는데 밤 사이 날씨가 바뀌었나보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쉼 없이 heavy snow 온단다. 지금 보니 벌써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지금 걱정해 봐야 소용 없는 일이니 그냥 커피잔을 들고 풍경을 즐기는게 낫겠지. 


눈은 모습으로 내리고, 비는 소리로 내린다. 


눈은 내릴 때 소리가 없다. 눈 자체가 내리는 소리도 없지만 내리는 눈의 결정들이 소리를 흡수하는 방음벽 역할을 하기 때문에 폭설이 내리는 날은 유난히 주위가 고요해진다. 그래서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바람이 나무를 휘돌아 가는 그 소리만 없다면, 눈이 내리는 숲은 기이할 만큼 적막하다. 그래서 눈은, 소리 없이, 모습으로 내린다. 


[제주 사려니 숲 @2012 / Samsung NX20]

2012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방문했던 제주 사려니 숲이 그랬다. 갑작스럽게 내리기 시작한 폭설, 관리 공단의 인터넷 예약 시스템 오류, 일년에 몇 번 없다는 바람 불지 않는 제주의 아침. 우연에 우연이 겹치고 겹쳐 넓은 숲 전체에 사람 이라고는 나와 아내 단 둘 뿐이고, 우리가 눈을 밟는 발소리와 내쉬는 숨소리 말고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던 그 숲. 아마 이날 걸었던 그런 숲 길을 평생 다시 걸을 수 있을것 같지는 않다. 걷는 내내 아내와 둘이 주위 모습에 매혹되어 있었던 숲.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항상 그 날 아침 사려니 숲의 풍경이 떠오른다. 


이 짧은 글을 적는 사이 커피가 식었다. 머그잔이 아닌 텀블러에 내릴 걸 그랬나. 


커피를 한잔 더 내리는 대신, 따뜻한 레몬차를 끓여야 겠다.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아내를 위해, 그리고 눈 오는 모습을 보며 푸근해 하는 날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