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ce President

9월 인사 일정에 맞춰 VP 승진이 결정됐다.  지난주 금요일에 CEO와 면담을 했고 이번주부터 HR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follow-up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주말부터 어제까지 경영진들의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생전 구경도 못해봤던 비싼 와인을 맛보고 있다. 이 무더운 여름에도 차가운 white 보다는 진한 red wine을 좋아하는 red guy 로 소문이 난 덕을 본다고 할까.

이 회사에 입사한게 2019년 여름이었으니까 꼭 3년이 지났다. 입사후 이듬해에 Senior Engineer에서 개발팀 Director로 승진했고, 두 해가 더 지난 올해 VP 로 승진을 하게 됐다. 회사 board 에서도 승인 됐고, CEO의 정식 오퍼도 accept 했으니 앞으로 한달 동안 회사가 망하지 않는한 그대로 진행되겠지 싶다. 아직 사내에는 confidential 이지만 여기에 적는다고 우리 회사 사람들이 와서 이 글을 읽어볼 가능성은 없으니 괜찮겠지. Confidential인 이유는, VP중 한명이 lay off 될 예정이고 내가 그 자리에 가는 거라 조직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다. 사실 이왕 VP가 되는 거라면 현재 공석인, 내가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개발 VP로 승진한다면 참 좋았을텐데, 개발을 떠나 회사 운영쪽 VP로 가게 되는거라 나도 불편하고 operation쪽 인력들도 알게 되면 마음이 불편하리라 생각한다. 개발 VP였다면.. 어차피 공석이었고, 마침 내가 그 역할 하고 있었으니 바뀌는 것 없이 타이틀과 연봉만 올라가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을텐데 operation쪽 VP가 되는거라 어떻게 경영진이 이유를 설명하든 말이 나올수 밖에 없는 상황.

기분이 좋냐 하면 그렇지 않다. 젊은 시절과 달리 커리어 래더를 올라가는 일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기에 더 많은 갈등을 직면해야 하는 자리는 더 많은 스트레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은 승진하지 않아도.. 실무자로 일해도 먹고 살고 은퇴하는데 문제가 없으니까 돈 조금 더 벌자고 승진하는건 내가 커리어상 다른 목표가 있는게 아니라면 불필요한 일이다. 분명 미국에 올 땐 실무 엔지니어로 은퇴하리라 생각을 했는데 첫 직장부터 꼬이면서 실무자의 길에서 순식간에 멀어져 버렸다. 하루라도 빨리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이겨내고 LED가 아닌 다른 industry에서, 그리고 좀 더 working level position을 찾는 일에 집착을 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버스 떠난 느낌. 

사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1주일 정도 고민하다 거절 했었는데, 재차 제안이 왔고 결국 오퍼를 받아 들였다. 개발자로의 포지션을 떠나는게 현명한 일인가 하는 고민도 많았는데,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업계에서 실무 개발자가 아닌 개발 매니저 포지션은 약간 어정쩡한, 앞날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미국에서 더 오래 직장 생활을 해야 하고, 실무자로 일하는게 불가능해 졌다면 미국 회사의 operation쪽 책임자가 되어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은 기회라는 판단도 들었고.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이제 미국 이민의 2라운드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