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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 클럽

요트 클럽을 알아보고 있다.  은퇴 무렵, 그러니까 지금부터 15년 뒤에 여건이 된다면 블루워터 요트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여러가지 필요하긴 하겠으나 일단은 요트에 익숙해지는게 필요하고 앞으로 한 10년은 준비를 해야 겠다는 판단이 섰다. 가능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내가 준비가 부족해서 못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으니까. 그 첫단계로 세일링 클래스 등록. 다음달부터 조금씩 항해술을 배울 예정. 즐거운 배움이었으면 좋겠다.

7월의 저녁

쓰레기 봉투를 내놓으러 나갔다가 현관에 주저 앉아 한참을 있었다. 7월도 후반부로 접어든 지금, 예상치 못했던 반딧불이들이 아직도 앞마당에서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  마치 내 시선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피해서 시선의 모퉁이를 찾아 반짝이는 이 작은 반딧불이들을 쫓노라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앉아 있게 된다.  주말을 마무리 하는 저녁.  적당한 알콜이 들어갔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재즈 음악도 듣고 있고.  좋다. 

운동 횟수 늘리기

이번주부터 운동 패턴을 바꿨다. 전체 운동 시간이 아니라 운동 횟수에 좀 더 집중하는 식으로.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을 요약하면, 아침에는 내가 일어나는 시간과 아이들 깨워서 아침 챙겨야 하는 시간 사이가 짧고(30분 정도), 퇴근하고 나서는 아이들 라이드 해야 해서 바쁜게 끝나면 저녁 시간이 되는데 나는 잠을 일찍 자야 하는 스타일이라 저녁 운동을 하기도 애매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이유로 운동하는 횟수는 줄어들고, 주말 혹은 어쩌다 평일에 운동을 할 때면 보상 심리로 지나치게 오래 운동을 하려 하다가 다치는 일이 매년 반복되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딱 1마일만 집 근처를 달리고 들어온다. 1마일을 천천히 조깅하면 12-13분 정도 걸리는데 나가기 위해 옷 입고 준비하는 시간을 포함해도 15분이면 된다. 이 정도 운동을 해서는 체중 조절이고 뭐고 별 효과가 없을건 아는데, 몸 건강 보다 정신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몸을 움직여 땀을 내고 운동을 한다' 는 의미로 접근하기로 했다. 그래서 앞으로 몇 달 평일 아침에 15분을 투자해서 딱 1마일 집 주위를 달리는걸 해보려 한다. 효과가 있기를. 지금은 무엇보다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고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게 중요하니까.  

Z의 기타

내가 함께 일하는 네명의 디렉터중 Z 라는 사람이 있다. 테네시에 살고 있고 올해 65세가 되었는데, 취미로 기타 연주를 좋아하고 기타 수집도 한다. 집에 녹음실도 갖추고 있다. 그가 얼마전 뉴저지 본사에 왔었고 온 김에 나와 점심 식사를 했는데 이런 저런 잡담을 하던 중 본인 기타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기타들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 하다 인생 첫 기타 이야기가 나왔는데, 15살때 선물 받았다고 했다. 그 기타를 선물해준 사람이 그 디렉터의 지금 와이프. 와이프는 16살이었고, 열심히 파트타임으로 일해서 모은 돈으로 자기의 첫 기타를 사줬단다. 그러면서 그 기타를 연주하던 15살의 자기 사진을 보여줬는데(기타를 선물해준 당시 여자친구가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을 몇년전 휴대폰으로 찍어 디지털화 했다고 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지금의 그 디렉터는 엄청난 과체중에 몸 여기저기 문제가 있어 아픈 사람 티가 난다. 하지만 흑백 사진 속의 그는 날렵한 체형에 긴 머리를 하고 기타에 푹 빠져 연주하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가 연주를 하면 아내가 항상 곁에서 그걸 듣는단다. 사진을 보던 그 몇 초의 시간 동안 마치 한편의 다큐를 본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사춘기 시절인 15살에 데이트를 시작해 결혼생활 포함 50년을 함께 한다는건 어떤 기분일까. 서른살에 결혼해 여든까지 함께 사는 것과도 분명 다를것 같다. 그리고 15살에 즐기던 취미를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까지, 그걸 지원해주는 배우자와 함께 즐긴다는 건 또 어떤 걸까. 그의 자녀들이 사십대가 되었다니 조금 늘려 잡으면 나도 그의 자녀 뻘이다. 간혹 자신의 자녀뻘인 직장 상사와 일하는게 어떤건지 궁금하기는 한데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런건 답을 들어도 정말 그의 생각이 어떤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분명한건 나는 그에게 정말 많이 배우고 있다. 65세가 된 그가 얼마나 더 나와 함께 일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올 초부터 나는 그의 successor 를 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그를 대체할 인력...

미국 생활 9년차

2018년 6월 22일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국으 떠나 미국에 랜딩했으니, 오늘로 꼭 8년을 채웠다. 뭔가 길게 이야기 할 거리가 있다는 느낌과, 그냥 와인 한잔 하면서 취해있고 싶다는 기분이 모두 든다. 그런데 두가지 모두 오늘은 어렵다. 그래서 그냥 이 한마디.  내일부터는 미국 생활 9년차.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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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high 강을 따라 형성된 트레일을 따라 45마일 자전거를 타고 왔다.  계곡 사이에 난 트레일이라 그늘도 많고 길도 좋아서 자전거 타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았다. 포코노 근처에서 트레일을 벗어나 평화의집 수녀원에 들려 점심을 얻어 먹었는데, 수녀님들께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주셔서 과식을 한 탓에 돌아올때는 좀 버거웠다.  그런데 이 날 자전거 타면서 진짜로 힘들었던건 무릎이었다. 둔근도 약해지고, 체중도 늘었고, 관절을 감싸고 있는 여타 다른 근육들도 모두 약해졌기 때문일텐데 라이드 끝 무렵에 무릎이 overuse 된 듯 통증이 찾아왔다. 사실 이날 처음 느낀건 아니고, 특히 작년부터 느끼고 있는데 전에는 아무 문제 없이 수월하게 자전거로 주파했던 트레일이 완주하고 나면 무릎에 부담을 느꼈다.  이걸 극복하려면 더 많이 운동하고 이제는 근력 운동도 제법 해야 할텐데 시간이 마땅치 않다. 핑계라면 핑계인데, 정말 그렇다. 어쨌든 매일 스트레칭을 좀 더 하고 하루라도 운동량을 늘리려 애를 쓰고는 있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런지.  다른건 몰라도 자전거는 최대한 오래 즐기고 싶다. 60대가 되더라도, 70대가 되더라도 이번 처럼 경치 좋은 트레일에서 적당한 속도감을 느끼며 운동하기에 자전거만한 수단이 없으니까.  

여우

  막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길에 길 옆을 총총 걸어가고 있는 여우를 마주쳤다. 운전석에 있는 나는 못봤는데 조수석에 앉아 있던 막내가 먼저 발견했다. 입에 뭔가를 물고 있었는데 사냥에 성공해서인지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막내와의 대화는 저 여우가 '그 여우' 인지에 대한 쪽으로 넘어갔다. '그 여우' 가 뭐냐 하면, 얼마 전에 막내가 다니는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 수풀에 자리를 잡고 새끼를 낳아 기르기 시작한 여우를 말한다. 사람을 공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야생동물 보호 센터에서 생포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게 금지되어 있어서 새끼를 다 길러 떠날때까지 그대로 두는 수 밖에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여우가 새끼를 키우는 수풀 가까이 가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으나 아이들이 말을 들을 리 없다. 이 여우도 사람에게 공격적이지 않고 꼭 길고양이처럼 굴어서 대담한 몇몇 아이들은 여우를 쓰다듬어 준 적도 있다고. 선생님들은 뒷목 잡을 이야기지만 아이들 사이에선 영웅담처럼 돌아다닌다. 막내와 내가 오늘 아침 여우와 마주친 곳은 학교에서 길 하나 건너면 되는 곳이고 보금자리로부터 따져도 0.5마일 정도 거리라 충분히 그 여우일 수 있다. 재작년부터 여우를 마주치는 경우가 느는데 아무래도 여우들이 돌아온 것 같다. 이 동네에 처음 왔을땐 토끼들이 그렇게 많았다. 그러다 고양이와 여우가 늘면서 토끼가 줄어들더니 이어서 여우도 사라졌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다시 토끼들이 많이 보인다 싶더니 여지없이 여우들도 늘고 있다. 내년 정도면 처음 왔을때만큼 토끼가 많아지고 여우도 많아질 것 같은데, 햇수로 따져보니 이 동네에 온지 7년을 꽉 채웠고 이제 8년차로 접어든다. 야생의 먹고 먹히는 관계가 변화를 거쳐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그 정도의 시간은 걸리나보다. 그러고 보니 다음달이면 미국에 넘어온지 8년을 채우고 이제 9년차에 접어든다. 10년 살면 집 같이 느낀다고 하던데 정말 그러려나. 시간 참 빠르다.

블루제이

블루제이는 남서부를 제외한 북미 대륙 대부분에 넓게 서식하는 텃새로 뉴저지에서는 흔히 보인다. 예쁘기는 한데 자주 보다 보니 점차 별 신경 안쓰게 되는 그런 흔한 텃새. 그런데 막내는 블루제이를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에 나오는 그 파랑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블루제이를 보면 행운이 뒤따를거라고 믿는다. 오늘 아침 학교 오케스트라 연습을 위해 일찍 데려다 주는 차 안에서 내가 오늘이 벌써 5월이네 하고 지나가는 말을 던졌는데 막내가 4월에 블루제이를 다섯번이나 봤으니 이번달에는 우리 다섯 식구 모두에게 좋은 일이 한가지씩 생길것 같다는 말을 했다. 아이의 말에 손뼉까지 쳐 주며 공감해줬다.  그래, 오월에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좋은 일이 한가지씩 꼭 생길거라고 믿어보자.

심란

첫째의 상태가 다시 나빠지고 있다. 그 동안은 컨디션의 기복은 있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 우상향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최근엔 우하향 하고 있다. 지난 반년은 컨디션이 나빠도 짧게 끝내고 다시 회복이 되었다면 지금은 회복이 되지 않고 계속 나쁘지고 있는 모습니다.  어느정도는 기복이 있으리라는건 알고 있었고 각오도 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경험한 것과 달리 깊고 거대한 down turn 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무겁다.  어제부터 아내와 저녁 묵주기도를 시작했는데 기도의 힘이 아이를 잡아줄 수 있기를.

첫째의 연극 무대, 그 기적같은 시간

어제 저녁, 그동안 고생하며 준비한 첫째의 연극 무대가 있었다. 무대 의상 준비팀이었던 아이는 그동안 매일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아이들과 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시간을 보냈고 심지어 공연 전날 마지막 dressed 리허설을 마친 뒤 디렉터가 의상을 수정하라는 폭탄을 던져서 공연 당일 무대에 배우들이 서기 직전까지 제대로 밥도 못먹고 의상팀 아이들과 함께 의상 수정을 해야 했다. 공연 당일. 첫째는 일찌감치 학교로 다시 갔고 나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은 공연 시간에 맞춰서 다 함께 이동했다. 꾸준히 연극/뮤지컬 팀에서 활동해온 둘째 덕분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공연은 여러차례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고등학생들의 연극은 중학교까지와는 달랐다. 공연 수준도 무척 높았지만 중학교까진 선생님들이 주도가 되어 진행된다면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모든걸 책임지고 진행했다. 선생님들의 역할은 안전관리 정도. 연출과 연기 지도는 물론이고 포스터 제작을 포함한 각종 홍보, 무대 장치 제작, 의상, 음악, 음향효과 및 조절, 무대 배경으로 쓰이는 영상 제작(무대와 연계시켜 자연스럽게 만들었는데, 마녀가 연기와 함께 새로 변신해서 날아가는 장면-실제로는 연기에 배우가 몸을 숨기고 연기에 가려진 스크린 부분에서 새가 나와 화면 너머로 사라지는 연출-은 정말 감탄을 했다)을 비롯 티켓 판매부터 공연 운영까지 모든걸 아이들이 진행했다. 심지어 브레이크 시간에 음식과 음료를 판매하는 팀도 따로 있었다. 티켓은 현장 구매도 가능 했지만 사전에 온라인으로 예매를 하지 않으면 좌석을 미리 지정할수 없기 때문에 미리 티케팅을 했다. 공연은 총 네 번, 목/금요일은 한번씩, 토요일은 두 번 하는데 공연마다 좌석이 거의 다 찰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지역 소식지에 광고가 올라오기도 했다. 첫째가 다니는 고등학교에는 몇 개인지 다 알기 어려울 정도로 클럽이 많은데 각 클럽들의 활동 수준이 높다. 영상 제작을 하는 클럽도 있고 방송 촬영을 하는 클럽, 비즈니스 경영/마케팅 클럽, 음악 등등 정말 수없이...

벽난로

잠이 깼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다시 잠들기엔 어정쩡한 시간. 새벽은 아니지만 이른 아침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오늘이 토요일이니 평소 같으면 침대에서 나와 이래저래 짐 챙기고 자전거를 차에 실으며 분주하게 주말 아침 라이딩을 준비했겠지만 생각보다 이른 추위와 얼마 전부터 말썽인 오른쪽 무릎은 추운 날씨에 나가서 라이드 하는 걸 주저하게 만든다. 그대로 누워서 휴대폰을 보며 한참 시간을 보내다 문득 벽난로나 미리 지펴 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이 일어나서 거실에 내려왔을 때 활활 타고 있는 벽난로와 함께 훈훈한 거실이 기다리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유일한 문제라면 뒷마당 장작 거치대에 있는 장작을 거실로 옮겨야 한다는 귀찮음인데 그 정도야 충분히 감수할만했다.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나오니 고양이들이 반긴다. 하지만 거실을 데우려면 고양이들과 놀아주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 길로 뒷마당으로 나가 장작 거치대에서 장작을 주워드는데 문득 하늘을 보니 제법 날이 밝아온 뒤였다. 사진을 찍을까 했는데 폰을 안 가져왔다. 서둘러 정작을 한 아름 끌어안고 거실로 돌아와 불을 지폈다. 벽난로에 장작과 스타터를 쌓아서 불을 붙이고 어둑어둑한 거실이 벽난로에서 나온 붉은빛으로 조금 밝아지는 걸 확인한 뒤 서둘로 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타오를 것 같은 선홍빛 하늘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낮게 내려앉은, 하지만 서로 다른 두 무리 구름의 결이 잘 보일 정도의 빛과 분홍색 아침 햇살이 고운 하늘이었다. 사진을 찍고 잠시 서서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다 집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겨울 초입이라고 하나 얇은 옷 한 겹 있고 서있기에 11월 중순의 아침 추위는 만만치 않다. 거실로 돌아오니 활활 타오르고 있는 벽난로가 반기고 있다. 이제 잠시 시간을 주면 훈훈한 온기가 돌겠지. 거실 불을 따로 켜지 않고 냉장고에서 아내가 만들어 둔 에그 샐러드를 꺼내와서 옆에 놓고 앉았다. 이제 가족들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 따뜻한 벽난로의 온기와 불빛이 일렁이는 어둑한 거실...

11월. 와인 & 치즈케이크

이제 시차 적응이 쉽게 되는 나이가 아니다. 지난 3주간 출장으로 아시아를 돌아다녔는데 시차에 완전히 적응하는데 2주 정도 걸렸으니 돌아와서도 그정도 걸리겠지.. 하는 중. 계속 며칠째 초저녁에 기절했다가 새벽에 깨서 그대로 밤을 지새고 있다. ...하여 오늘은 그냥 와인을 한병 열어서 아내가 만든 치즈케이크를 안주 삼아 한잔 하는중. 진판델 와인을 곁들인 아내의 치즈케이크는 온 세상에서 나만 아는 천상의 맛이다. 아내는 술을 안마시고, 이 치즈케이크를 선물받은 사람들은, 그 수가 많지도 않지만, 술 안드시는 수녀님들이거나 술 마시더라도 나 같은 와인 매니아가 아니라서. 특히나 진판델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아니다. 뭐, 살면서 "나만 아는 끝내주는 맛"이 있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즐거운 일이다.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면 함께 진판델 와인을 따고 엄마의 치즈케이크를 먹겠지. 11월이 되면 1년이 끝난 기분이 드는걸 보면 이제 미국 문화에 어지간히 적응했나보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뒷마당에 말리고 있던 장작을 정리하고 벽난로를 개시해야겠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와인에 좀 취하는게 먼저.

공장에 대한 기억

출장으로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를 돌아다니고 있다. 지금은 캄보디아 프놈펜. 오늘 여기 업체 두곳을 만나고 내일 아침 일찍 홍콩으로 출발할 예정. 이번 출장중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 회사에 놀러갔던 시간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청주에 있는 삼화전기에서 제법 오랜 시간 근무하셨는데 콘덴서가 주력 아이템이었던 회사였다. 요즘처럼 회사 출입 통제가 엄격하던 시대는 아니어서 아버지를 따라 생산 라인에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그 때 콘덴서를 생산하는 제조 공정이 40년이 더 지난 지금도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방문했던 공장들 중 내 기억속에 남아 있는 자동 제조 공정(정확하게는 콘덴서 불량을 걸러내는)과 동일한 설비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가 있었고 그 설비가 동작하는걸 지켜보면서 기억이 과거로 날아갔다. 설비들로 가득찬 생산 라인, 설비들이 동작하며 내는 소음으로 대화하려면 약간 소리를 질러야 하는 장소들, 반도체 방진복 까지는 아니지만 어느정도의 클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작업자들까지.. 내 기억속에 남아 있는 1980년대 삼화전기의 생산 라인이 그대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버지께선 당시에 설비를 2종류나 개발해서 회사에서 상을 받기도 했었는데 이런 공장들을 심사하며 다니는 입장이 되어 보니 아버지는 참 일 잘하는 직원이셨겠구나 싶다. 그만큼 대가를 받으셨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엔 많았던 이런 기초 제조업 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테니 아버지와의 기억이 묻어 있는 이런 생산 라인은 동남아시아를 가야 만나볼 수 있겠구나 싶다. 아직 살아 계셨다면 콘덴서 제조 라인에 대한 이야기로 한참 즐겁게 만들어 드릴 수 있었을텐데.

인터뷰

어제 저녁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 한곳과 인터뷰를 했다. 지난주에 Recurting company 한 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자기들이 현재 어떤 회사의 경영진을 리빌딩 하는 일을 의뢰받아 하고 있는데 내 커리어와 업무 역량이 잘 맞는것 같은데 한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했다. 마침 여러가지로 현재 직장에 대해 생각이 많던 터라 기회가 참 공교로왔다. 그래서 한번 만나보기로 하고 어제 그 회사의 HR VP와 전화 통화를 했다. HR VP와의 전화 인터뷰는 당초 예상했던 30분을 훌쩍 넘겨 한시간동안 진행됐다. 결론적으로 서로 원하는게 달라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이 한시간의 인터뷰는 그동안 미국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 회사에서 승진해서 경영진이 되었기에 경영진 채용을 위한 인터뷰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이 내게는 경영진 채용을 하는 회사와 갖는 첫번째 인터뷰였다. 지금까지 내가 인터뷰라 함은 항상 내가 무언가를 답해야 하는 자리였다. 나도 뭔가 물어보기는 했으나 내 연봉이나 회사에서 주는 베네핏 같은 패키지에 대한 질문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많은걸 물어봤다. 회사의 매출과 이익율, 주요 고객과 supplier들이 누군지, 중장기 전략적 방향, 제품전략, 왜 이번에 조직 개편을 하고 왜 특정 포지션이 만들어졌는지 등을 물었으며 설명을 듣다가 나라면 이렇게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에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설명을 듣다 보니 이 회사의 개발 리소스가 프로젝트 수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인력 확충 없이 생산 파트너와의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의 효율성을 개선시킬수 있는지 내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 회사의 상황에 맞춘 아이디어를 이야기 했고 그럴 경우의 문제점에 대해 질문도 받고 토론도 했다. 마치 인터뷰를 보는게 아니라 컨설팅을 하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회사가 나를 평가하는것 뿐만 아니라 나도 회사를 평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인터뷰마다 당신들이 왜 나와 일...

Phantom Equity 계약 갱신

며칠전 회사와의 PE 계약을 갱신했다. 2년전에 맺은 계약에서 모호했던 내용을 조금 보완하고 내가 받을 보상에 대한 내용도 조금 수정했다. 표면적으로는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plan이 발동되는 상황 및 조건에 따라 달라질 부분이라 큰 의미는 없다고 봐서(차이가 오십보 백보 수준도 안된다) 사인을 하며 밀고 당기고 하진 않았다. 2년전 처음 PE 계약을 할 땐 도대체 이게 뭔가 해서 한참 찾아봐야 했었는데 이제는 여러가지(예를 들면 회사의 예상 매각 가치와 내 지분율 같은) 지식이 늘어서 현재 계약이 내게 어느정도 이득을 줄 것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예상이 가능하다. 그래서 처음에 계약서에 사인을 할 때 만큼 흥분되지는 않았다. 이게 내 가족의 삶을 크게 바꿔놓을 정도의 계약은 아니라는걸 안다. 계약 내용을 아주 간략하게(하지만 핵심) 정리하면 회사가 상장이든, 인수/합병이든 뭔가 exit을 할 때 내가 챙길 돈을 더 많이 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하면서 대신 기존 계약은 취소하고 새로 5년짜리 계약을 맺자는것. 그러니까 돈 더 줄테니 더 오래 회사에서 일해 달라는 거다. 기존 계약은 4년이었고 이미 2년이 지났기에 50%의 권리를 이미 획득했는데 이걸 포기하는 대신 더 돈을 받는 거니까 이래저래 따져보면 내게 그다지 유리한 계약은 아니다. 욕심의 저울은 항상 각자의 입장으로 기운다. 회사는 날 5년 더 회사에 잡아두는 대가로 지불하는 베네핏이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할테고 나는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미국에 와서 어찌 보면 첫 직장인 지금 회사에서 6년을 일했다. 5년을 꽉 채워서 더 일하면(그러니까 5년내에 exit 이 되지 않는다고 보면) 10년 넘게 일해야 된다는 뜻이 된다. 물론 그동안 커리어 래더도 몇단계 올라 vice president 가 됐고 랜딩후 불안정했던 미국 생활도 안정됐으니 지난 6년은 내게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의 5년도 그럴 것인가는 의문. 승진할 수 있는 래더가 있기는 하지만 내가 그 자리까지는 ...

아이의 진로 선택

10학년이 된 첫째는 이제 11학년때 들을 AP 과목을 선택하고 있다. 처음 들었을땐 조금 이른것 아닌가 했는데 AP가 학교의 바운더리를 벗어나 있는 수업이라는걸 생각하면 준비 기간이 1년쯤 있는 것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필요하겠구나 싶다.  대학을 갈 생각이 있고, 어느 대학을 가는지, 그리고 어떤 분야로 진학하는지가 아주 중요한 학생과 부모들에게는 AP 과목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그리고 여기에 얽힌 여러 헤프닝도 많이 듣게 된다.  나와 아내는 첫째에게 과목 선택을 온전히 맡겼다. 그리고 아이는 Chemistry와 psychology 두 과목을 선택했는데 자기는 STEM 쪽이 적성에 맞는것 같다는게 유일한 설명이었다. 그 과목들에 대해서는 별 말 안했지만 딱 하나 질문을 했다. Physics 는 생각 없냐고. 그리곤 1초의 고민도 없는 단호박 답변을 들었다.  AP Physics 1 은 재미있고 쉬운 내용들만 배운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는 말을 해줬지만 요지부동. 더 이상 대화가 의미 없는것 같아 그렇구나 하고는 대화를 마쳤다. 생각해보면 나도 공대 안가고 물리학과 가겠다고 했을때 어머니 아버지 모두 별 말씀 안하셨지만 두 분 모두 내심 내가 순수과학쪽 보다는 공대를 원하셨던걸 알고는 있었다. 30년의 시간이 흘러, 나도 자기 미래를 선택하는 나이가 된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었다. 아이의 선택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려 하는건, 해봐야 소용 없는것도 있어서지만 잘되든 잘못되든 자기가 처음으로 하는 삶에 대한 선택 자체를 못하게 해서는 안되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도 STEM을 하겠다는 아이가 아빠의 전공인 physics는 생각도 안한다는게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어쩌랴. 그정도 아쉬움은 아침에 마시는 따듯한 차 한잔으로 씻어 내려보내야지.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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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동네를 달리다 문득 참 길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어로 고즈넉하다고 표현해도 되는 풍경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달리면서 동네가/길이 참 고즈넉하다고 느꼈다.  좀 더 조용하면 좋겠지만, 그건 이 동네에서는 바랄수 없는 일이고 단지 아침 저녁 만이라도 이렇게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길을 달릴수 있었으면 좋겠다. 

에이징 커브

과거 기록을 보면, 5년 전에는 31.5마일 동네 한바퀴 도는 코스를 2시간에 주파했었다. 그동안 매일은 아니어도 그래도 꾸준히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요즘은 같은 코스를 타면 2시간 15분 이상이 걸린다. 충분히 예상은 했었는데, 확실히 전과 비교하면 앞으로 치고 나가는 힘이 부족해 졌음을 최근 라이드에서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래블 코스에서도 전에는 기어비를 약간만 낮추면 평지마냥 올라갔던 곳을 요즘은 더 낮은 기어비에서도 힘들게 올라간다. 5년전과 지금만 비교하는게 아니라 매년 기록을 보면 조금씩 기록이 나빠지고 있는게 보인다. 아무래도 운동을 통해 나아지는 체력이 나이로 인해 줄어드는 체력 혹은 근력을 커버하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흔히 말하는 에이징 커브? 나이에 따른 근손실? 뭐 그런거. 체력은 주는데 체중은 조금씩 늘고 있어 상황이 더 악화가 되는. 결국 운동량이 부족하다는 건데, 이게 일상 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장시간 자전거를 타야만 느껴지니 평소 운동 시간을 지금보다 더 늘리는게 쉽게 되지 않는다.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고나 할까. 핑계를 대자면.. 5년전과 달리 지금은 아이들 라이드 할일이 많아서 평일에 운동할 시간을 내기 힘들다는 것. 아내와 둘이 세 아이들 라이드하고 저녁 먹이고 어쩌고 하면 금방 7시, 8시가 된다. 9시에는 자야 다음날 컨디션 유지가 되는 관계로 밤 운동을 하기 어렵다. 여긴 한국과 달리 밤에 나가서 운동할만한 환경도 아니고.  다시 zwift 라도 열심히 해야 하나. 그거 영 무료해서 재미 없는데..

Bikeraf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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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bikerafting에 대해 찾아봤는데 굉장히 재미있을것 같다. 아예 자전거를 올려서 고정시킬수 있는 디자인으로 출시된 bikerafting용 raft 도 있을 정도니까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듯. 그동안 호수나 강에 막혀서 자전거로 접근이 어려운 그래블 코스를 보며 이런곳은 도대체 어떻게 가는건지 궁금했었는데 raft에 자전거를 싣고 넘어가는게 답이었던 것.  Raft 포함 사야하는 것들이 있어서 올해는 어렵고 내년 정도에 시작을 해볼까 한다. 그때까지 bikerafting 하기 좋은 코스들을 많이 찾아 놔야지.  좁은 국토에 산과 강이 많은 한국이야 말로 packrafting이나 bikerafting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인데 한국에 있을때 이걸 몰랐다는게 아쉽다. 동강이나 한탄강을 낀 자전거길도 많아 미국에서처럼 오지 탐험을 하는 수준의 장비(강물을 마시기 위한 휴대용 water filter라던가..)를 들고갈 필요도 없었을텐데. 

'공정함'이란 개념

일이 일이다 보니 제품을 미국에 가져왔을 때의 총원가를 계산해야 할 일이 많고 그 방정식에는 당연히 생산 원가가 들어갈 수 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근로자 1인당 작업시간과 인건비 등을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다.  요즘과 같은 국제 정치 환경에서 내가 있는 업계의 회사들에겐 원산지 증명 가능 여부(중국산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느냐..)가 단순 생산 원가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예전만큼 인건비의 중요도가 높지는 않으나 낮을수록 좋다는건 변함이 없다. 그리고 낮을수록 좋다는 그 지점에서 어쩔수 없이 공정함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다.  Michael Sandal 의 Justice를 보면 인도 뭄바이의 운전기사와 미국에서 동일 노동을 하는 운전기사의 비교가 나온다. 대부분의 차가 교통 법규를 지키지 않는 복잡하고 비좁은 곳에서 운전을 해서 먹고 사는 인도 운전기사의 운전 실력이 미국의 운전기사보다 부족할리 없다. Daniel Markovits이 The Meritocracy Trap 에서 지적했듯이 능력주의라는 기준에서 바라보자면 이 둘은 최소한 비슷한 돈을 벌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샌델 교수의 말대로 개인의 노력이나 실력과 별개로 내 노력으로 취득하지 않은 환경과 운이라는, 혹은 국적이라는 인자의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물론 동일한 일을 하는 경우 각자가 버는 소득으로 각자의 나라에서 혹은 환경에서 누릴수 있는 경제적, 문화적 위치와 가치가 얼마냐 하는 논란은 있을수 있겠으나 지금이 각각의 지역/경제 사회가 분리되어 있던 대항해 시대 이전도 아니고, 어느 정도는 비교 가능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지난 며칠, 낮에는 에어컨디셔닝도 되지 않는 베트남 공장들의 원가표를 들여다 보고, 저녁에는 초호화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강남 JW Marriott 보다 좋은 호텔에서 잠을 청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자꾸 괴리감이 든다. 오늘은 캄보디아로 넘어갈 예정인데 거기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머리속은 복잡한데 그렇다고 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