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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zz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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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은...맞지 않는 조각때문에 고민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잡고 있다 보면 결국은 완성되는게 퍼즐 맞추기이다. ... 하지만 이런 퍼즐 맞추기에 가끔씩 비교되는 세상의 이런저런 일들은 퍼즐 조각이 몇개씩 없기도 하고, 똑같은 조각이 몇개씩 있기도 한 법인가 보다.

Omnib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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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하늘을 어둡게 하던 비구름이 물러갔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울의 마천루 사이로 파란 하늘과 상쾌할만큼 차가운 공기, 그리고 당연하지만 따가운 햇살이 여름의 초입을 그려내고 있다. 여름이라기 보다는 늦가을 차가와지는 공기와 따가운 햇살의 마지막 경주를 보는 듯한..그런 모습이다. 유일하게 그때와 구분지을 수 있는 것은 나뭇잎의 색이 점점 푸르러 지고 있다는 사실뿐. 지금은 7시가 조금 넘은 저녁 시간이고 아직도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저녁이 항상 그렇듯이- 한낮의 뜨거움을 긴 아쉬움으로 남기고 있다. 그리고 반팔을 입기엔 조금 쌀쌀한 바람이 뜨거워진 아스팔트를 식혀주며 상괘함을 전해주고 있다. 마치 Kevin Kern의 음악을 듣는 듯한 경쾌함과 함께. 지금의 이 순간을 사랑한다. 의무감에 해야하는 일도 없고, 누군가와 만나야 하는 약속도 없는 저녁시간이 날 기다리고 있고 활짝 열어둔 창문으로는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을만큼의 상쾌함이 밀려들고 있고 스피커에선 요란스럽지 않은 경쾌함이 흐르는 지금의 이 시간을. 현재가 경쾌하며 편안한데 굳이 과거와 미래로 아픔과 희망을 떠올리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소리의 지배를 많이 받는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때 삽입곡의 선율을 따라가느라 눈앞의 화면을 놓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는 영화의 장면보다 영화음악과 그 음악의 분위기를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어려서 어머니께 받은 교육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만화영화인 ‘미키 마우스’ 와 ‘딱다구리’를 볼때면 어머니께선 옆에서 항상 배경으로 나오는 음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고, 또 집중해서 들을 것을 요구 하셨었다. 대부분이 경쾌한 클래식 음악이었는데 그때문에 내가 지금의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는게 타당한 설명이겠지. 음악을 들어도 여러 장르의, 여러 음악가의 음악을 듣는 것은 못한다. 한가지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 그 선율에 내 감정이 따라가기 때문에 여러 분위기의 여러 음악을 들으면 내 감정이 계속 변화하기 때문...

바람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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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가 없는 것을 본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환상 이라고도 부르고 혹은 신기루 라고도 부르지만 어쨌든 그 이면에 따라다니는 근본적인 바램은 형태가 없는 그것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형상을 부여해서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바램은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고 옛 이야기속의 주인공으로 자리잡는다. 그리고 간혹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하나의 사물로 인식이 되기도 한다. 드물긴 하지만. 그러한 바램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사물로 ‘바람’ 이 있다. 바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다. 누군가 바위를 굴린다고 해서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는 것처럼 공기가 기압차에 의해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고 해서 그것을 다른 이름을 부여해서 부른다는 것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독 ‘공기’ 라는 존재의 흐름에 의미를 부여했고 ‘바람’ 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형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게 이름을 부여했기에, 바람은 우리에게 고정된 감상과 형태에 대한 인식을 주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에대해 우리가 익숙해질 정도로. 바람은 생명을 키우고, 기온을 유지시켜 주며, 간혹 모든것을 부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리’ 를 낸다. 바람은 공기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것에 불과하고 공기가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임을 고려해볼 때 그 매질 자체가 소리를 낸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다.(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연과학도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할지는 모르지만. :-) 바람이라는 것이 고정된 형상이 없기 때문에 생각하기에 따라 ‘바람의 소리’는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바람의 소리라는 것은 없다. 바람이 무엇인가에(관악기가 될 수도 있고 대나무 숲이 될 수도 있는) 휘돌아 가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곳에 바람만 있다고 해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바람의 소리 라는 것은...

7년

어렸을 때 유난히 이사를 많이 다녔던 우리 집이지만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던 시기부터는 단 한차례도 이사를 가지 않았고 그나마 이사를 다녔던 시기도 걸어서 30분 안쪽의 동네들 안에서(적어도 내 기억에는) 다녔던 것이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수년만에 찾아왔을때의 느낌 같은건 경험에 없다. 그리고 정말 우연찮게도 오늘 난 그런 경험을 했다. 95년 겨울부터 96년 겨울까지 정말로 많은 횟수를 찾았던 동네를 오늘 다시 찾아 갔다. 처음으로 그 동네를 찾아갔던 것과 비슷한 시간대에 두번째 찾아갔던 것과 유사한 이유로. 7년전에 걸었던, 그리고 유난히도 잊지 않으려고 애썼던 길, 골목등이 다시금 눈에 띠면서 느끼는 감정들. 그건 반가움이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찾아온 그곳이, 비록 골목 어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가게들은 변했지만 풍기는 느낌과 구조가 변하지 않은채로 그냥 있다는 것은 정말로 반가운 일이었다. 괜스런 즐거움에 주위를 자꾸 두리번 거리게 만들 정도로. 언젠가의 글에도 썼지만 기억이라는 것은 감정의 해석이다. 7년전에 겪었던 그 많은 일들에 대한 지금의 내 감정이 평온하기 때문에 어쩌면 그 곳의 기억이 반가움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좀더 과거였다면 그건 굉장히 괴로운 풍경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걸 보면 더욱 확실하게. 하지만 그러한 생각의 흐름과 무관하게 반가움과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드는 건 분명한 사실이므로 애써 그러한 즐거움을 해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무엇이 지금의 날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분명 납득하기 어려웠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는 이해하고-납득해 버리는 이 모습은. 그리고 덕분에 난 나쁜 기억이 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지금 이순간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있다. 물론 먼 훗날 지금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서 어째서 그때 그렇게 바보같이 굴었는지를 화낼지도 모를 일이지만 중요한건 현재지 미래에 내가 어떻게 느깔까를 고민하는 건 미래의 나한테나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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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사용하던 크레파스에는 하늘색' 이라는 색이 있었다. 옅은 파란색이었을 뿐인데 그 크레파스에는 분명하늘색’이라고 적혀 있었고 모두가 하늘을 칠할 땐 그 크레파스를 이용해서 색칠을 했기 때문에 항상 가장 먼저 닳아 없어지는 종류의 크레프스들 중 하나였다. 주황색을 놓고 가끔 오렌지색이나 귤색이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 색은 옅은 파란색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부르지 않고 항상 하늘색 이라고 불렀었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하늘은 고정된 색을 지니고 있지 않다. 시각에 따라, 그리고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을 가진 존재이다. 그렇게 본다면 차라리 카멜레온의 색이 무슨 색이냐는 정의를 내리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색은 항상 옅은 파란색이라고 모두에게 인식되어 있었다. 내가 대학에 오기까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동아리 후배 한명의 아이디를 접하기 전까지 내게 있어서도 하늘색은 그저 고정적인 색일 뿐이었다. 어렸을 때 그림대회에 억지로 나가면 특이하게 그리는 것이 입상에 유리하다며 손발은 크게, 사람 얼굴이나 다른 색은 내가 실제로 보는 것과 다르게 그리도록 강요 받았을 경우에나 다른 색으로 칠했을 뿐이다. 그 후배의 아이디는 내가 하늘색 이라고 느끼고 있던 색과 어찌보면 같은 뜻이지만 어감은 전혀 다른 단어인 `하늘빛’ 이었다. 한번도 하늘의 색을 `빛’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본 적이 없었고 그런 표현을 접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 그 단어는 무척이나 싱그러운 느낌으로 찾아왔다. 하늘색 과 하늘빛 하늘빛은 고정적이지 않은, 단순한 크레파스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이다. 크레파스 하나로 칠할 수 있는 하늘색 처럼 빛을 흡수해서 색을 내는 물감이나 크레파스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이다. 샐로판지처럼 빛을 투과시키는 성질에 의해 표현되는 그런 빛이다. 오늘 하루종일 고민을 했다. 하늘빛 을 영어로 표현하면 어떤 단어가 될 것인가. lucid 정도면 적당할까. 가을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며칠째 서울 하늘이...

늦장마

어느덧, 매미소리가 잦아들어가면서 귀뚜라미 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인식시키기라도 하듯, 차가운 공기와 함께 비가 오고 있다. 혹자는 늦장마라고 부르기도 하는, 여름의 마지막 인사가. 유난히 더운날이 적었던 여름이었다. 온 세상이 떠내려 갈 것 같은 폭우도,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던 열대야도 없었다. 더울만 하면 비가 내려 이 도시의 열기를 식혀버리고, 그렇다고 긴 장마를 지나치지도, 여느해처럼 쉴새없이 올라오는 태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이 태풍이 일본열도로 갈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에 상륙할 것인지를 마치 스포츠 중계방송 보듯 했던 시기도 없었다. 굳이 정의하자면, 참 “조용히” 지나간 여름이다. 남부지방은 비피해도 제법 있었다지만, 내 체감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일들을 억지로 인식하려 애쓰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다. 그래서일까? 조용히 지나가던 여름이 아차 싶어서 늦게나마 장마를 불러오고 있는 이유가. 며칠째...근 일주일이 넘도록 우중충한 하늘과 연일 쏟아붇는 빗줄기를 봐야만 했다. 공식적인 장마철에마저 이런 모습은 보지 못했었는데. 그래도 덕분에 서울 하늘의 먼지들이 많이 씻겨졌는지, 간간히 개인 하늘은 가을하늘이 무색할 만큼 파랗고 예뻤다. 지나치게 많이 나온 수리비 견적으로 수리를 포기해 버린 내 카메라가 아쉬울 만큼..그만큼 예뻤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다. 이 비가 끝나고 나면 이제 가을이 시작될 거라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입밖으로 내어 말한다고 구박할 수도 있지만, 세상엔 사랑과 같이 다 아는 사실도 소리로 변화시켜 내보내야만 다가오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고 그냥 멀어져 버리는 것들도 있다. 다시금 다가오긴 하지만, 계절은 분명..그런 존재다. 입밖으로 내지 않으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쳐서 멀어져 버리는.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매년 가을이 오면, 난 계절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계절을 멈추고 싶다는 의미가 아닌, 말 그대로 계절이라는 ...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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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인가 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제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계절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라고. 그러면서 고향 집에서 보이는 곳에 있는 나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정말 우습게도, 그런 생각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는 느낌, 기다려지던 매미 울음소리, 바람이 불때마다 들려오는 커다란 활엽수들의 음악까지도. 그저 덥다는 생각과, 에어컨 바람이 싫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구실과 집을 오갔을 뿐이다. 깨달음은 순간에 찾아온다. 책을 한권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나오기 위해 도서관의 회전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랄만큼 커다랗게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내 뒷사람이 회전문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내 등을 가볍게 밀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동안 난 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채 멍하니 서있었다. 언제부터 였을까?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매미 울음 소리가 내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 것이. 혹시 내가 도서관에 들어갈때까지는 매미들이 울지 않고 있었다가 공교롭게도 내가 도서관에서 나오는 그 순간에 맞춰서 울기 시작한걸까? 상식적으로 그럴 확률은 너무나 작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언제나 그래왔다. 지금 내 방의 달력이 아직도 6월인 것처럼, 난 시간이 흐르는 것에 대해서 무관심 하다고 해도 할말이 없을만큼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1999년 겨울이 다가오는 것 역시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고 이번에는 2003년의 여름이 다가오는 것을 그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면서야 깨달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달력이 한달전것이니 양호한 편이다. 심할때는 세달 전인 경우도 있었으니까. 시간이 이토록 의식의 뒷면을 타고 몰래 흘러 버린다는 사실이 너무나 즐겁다. 누가 했던 말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은 돌아보며 아쉬워 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지나쳐 보내야 할 대상이다. 어느책에 나와있는 말인지는 아니까 누구의 말인지 마음만 먹으면 정확한 문장과 함께 찾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시험 답안을 작성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온 세상을 덮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