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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Retreat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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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Retreat House, Pennsylvania @2019 / Samsung Galaxy S10] 펜실베니아에 있는 수녀원으로 성당에서 아이들 여름 캠프를 왔다. 날씨도, 자그마한 목조 성당도 그리고 그 곳을 달리는 아이들까지. 모든 것이 참 아름답고 평온하다.

첫째의 용돈 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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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벌이 연습중인 첫째. 앞마당 잔디는 앞으로 자기가 깍고 용돈을 받겠다는 계획인데, 한번 시켜 보니 아직은 좀 더 팔다리 힘을 길러야 쉽게쉽게 할 수 있을 걸로 보인다.

이사 완료

애틀란타에서 뉴저지 집까지, 차로 총 16시간이 걸렸다. 애틀란타에서 워싱턴DC까지 12시간, 거기서 뉴저지까지 4시간. 매년 Thanksgiving 때마다 여기를 차로 왕복한다는 이웃이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한번만 힘들고 그 다음에는 조금씩 나아지나? 내년 여름 휴가때 놀러 내려 오라고 사람들이 이야기 했고 나도 그러겠다고 했는데 이 거리를 운전해서 왕복할 생각을 하니 아득하다. 생각 좀 다시 해봐야겠다.  어쨌든, 이제 여기서 앞으로 여러해.. 어쩌면 십년 이상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막내가 대학을 가기 전에 또 다시 다른 도시로 이사할 일은 없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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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사슴 무리가 며럿 돌아다니는데, 밤이면 우리집에도 찾아와서 화단의 화초들을 뜯어 먹고 여기저기 배설물을 남겨놓고는 사라진다. 어제는 내가 잠들기 전에 찾아온 덕(?)에 사진을 찍었는데, 어떻게 못오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사람들이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인지 내가 큰 소리를 내도 잠시 쳐다볼 뿐 신경쓰지 않는다. 찾아보니 사슴이 싫어하는 냄새를 내는 약품도 있다는 것 같은데...

고향

2주만에 주말을 보내러 애틀란타에 내려왔다. 우버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애틀란타로 가겠다고 길을 나선지 6시간째. 아직 집에 도착하지 못했다. 공항까지 가는 길에, 기다리고, 비행기 타고, 다시 집까지. 참 멀다. 드라이버에게 부탁해서 창문을 조금 열고 달리고 있다. 이 남쪽의 바람은 벌써 다르다. 기분좋은 따뜻함. 구불구불.. 마치 개미굴을 땅 위에 펼쳐놓은 듯한 도로만 보다 넓은 차선에 곧게 뻗은 애틀란타의 도로를 보니 속이 뻥 뚤리는 것 같다. 이민자에겐 짐가방 들고 첫 랜딩한 도시가 고향이라더니 정말 이곳이 내겐 고향같은 느낌이다. 내일은 벌써 이웃과의 저녁이 약속되어 있다. 북동부 대도심의 정신없고 복잡하고 여유 없는 곳과 다른, 느긋한 도시의 느긋한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 힘들다. 그건 어느 도시든, 어느 나라든 모두 마찬가지. 여기라고 파랑새가 더 많지는 않다. 삶의 고단함은 환경의 풍요로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 그렇기 때문에 그 고단함 속에서도 여유를 갖고 사는 이 도시의 사람들이 좋다. 적어도... 여기는 앞차가 느리게 간다고 왕복 2차선 도로에서 갓길로 추월해 버리는 사람들은 없으니까. 매분초를 돈으로 계산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아니니까. 

어머니의 날

미국의 5/12일, 오늘은 어머니의 날이다. 성당 주일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이 어머니의 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성가대에 부탁해 '어머니 마음' 을 부르게 하셨다.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혼자였으니 더욱 그랬겠지. 불가항력으로, 한국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났다. 그러면서 지난주 주보에서 읽었던 한편의 글이 생각났다. 지난주에는 애틀란타에 내려갔기에 가족들과 둘루스 성당에 갔었는데 그때 주보에 어머니에 대한 글이 실려 있었다. 수녀님 한분이 쓰신 글이었는데 자식에 대한 헌신과 희생으로 자존감을 지킬수 밖에 없었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며 그런 희생과 마음을, 그렇게 자식에게 모든걸 내주는 자신을 보며 스스로를 '엄마답다'는 말로 격려해야만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그분들의 아픔을 알기에 우리는 '엄마'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난다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우리에게 엄마라는 말은 생물학적인 대상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그 끝이 어딘지 모를 희생과 헌신의 말이고 그 때문에 항상 마음 한국석이 불편하고 아프고 눈물을 짓게 되는 감정선의 어디쯤인가를 지칭하는.. 정의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 글의 마지막에서 수녀님은 당신의 어머니께(그리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들에게) 이리 말한다. 이제 자식에 대한 희생과 헌신은 충분하니, 지금이라도 당신을 위한 삶을 사시라고. 자녀에게 '희생'을 해야만 엄마 다운 엄마가 되는게 아니라고. 그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 주보를 그대로 잘 접어서 가방에 넣어와 Newark 공항으로 올라오는 비행기 안에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정말 하고 싶은 그 말을 어쩌면 그리도 잘 짚어내셨을까. 성당 구석에 앉아 성가대가 부르는 어머니의 마음을 들으면서 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둘째에게 나도 모르게 '아빠도 엄마가 보고싶다'고 말했다가 갑자기 무슨 말인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

손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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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페이스북 친구 한명이 매일 아침 손글씨로 생각을 정리한다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마침 아내가 최근 성경 옮겨 쓰기를 시작했다. 거실 라운드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노트에 손으로 성경을 옮겨 적고 있는 아내를 보다 마침 새 펜도 생겼겠다... 나도 한번 해볼까? 싶어서 손으로 아무 노트나 잡고 아무 생각이나 적기 시작했는데, 이게 기대했던 것 보다 괜찮다. 지난 며칠동안 해보니, 특히 아침이나 밤 늦게 식구들이 모두 각자의 잠자리에 들고나서 혼자의 시간을 노트와 펜을 잡고 있노라면, 글씨가 써질때 들리는 살짝 사각거리는 펜과 종이의 마찰음이 기분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머리속으로 생각이 구체화 되기도 전에 키보드로 순식간에 타이핑해가는 속도가 아니라 한글자씩 천천히 담아내는 표현의 속도도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생각해보니 손으로 글을 길게 적어본건 고등학생때가 마지막인 것 같은데 이게 이렇게 기분이 좋은 일이었나 싶다. 지난 며칠 쓴 글은 정말 아무 생각이나 적고 있어서, 오랜만에 글씨를 많이 쓰다보니 손이 아프다는둥, 펜선이 너무 굵다는 둥 하며 잡설이 잔뜩인데 제대로 노트를 사서 일기처럼 차곡차곡 손으로 글을 적어 모아볼까도 고민중이다. 지금까지 일기는 Daygram에 적고 있는데 몇년치 일기가 들어 있어 이 앱은 포기하기 어려운 옵션이라는 문제가 있긴 한데.. 그런 고민을 할 만큼 손으로 글을 적는다는 행위가 주는 차분함이 무척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