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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미래

매일 아침 출근길에는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린다. 둘이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 하는게 일반적인데 오늘은 뜬금 없이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가 온다는데 아이들을 이런거 저런거 시켜서 준비 해야 한다고 주위에서 그러더라는. 첨단 과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아들은 당신께 그런 문제를 물어볼 가장 좋은 상대이리라. 그리고 그 말씀의 끝은 결국 당신 손주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내가 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함으로 연결됐다.  어머니께 그랬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아는 사람은 없다고.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도 알 수 없다고. 지금 어떤걸 준비한다고 해도 그게 시간낭비 노력 낭비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으니 나는 그냥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단 대처를 좀 더 잘하기 위해 안테나를 곤두세우고는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어머니께 드렸던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대비를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어떤 세상이 펼쳐지든 대처는 할 수 있죠. 그래서 앞으로는 대비하는 것 보다 대처하는게 중요한 세상이 될 것 같아요. 제 세대 까지는 대비하는게 중요한 시대였어요. 지식을 쌓기 위해 공부하고, 경험하고 하는 그 모든게 결국 어떠한 좁은 영역의 미래가 펼쳐졌을때 경쟁력을 발휘하기 위해 대비하는 과정이었고 그러다 보니 끈기 있고, 성실한.. 장기간의 대비를 잘 하는 사람이 뛰어난 인재였어요. 우리가 공부와 학습을 열심히 해야 했던 이유죠. 그런데 제 아이들은 대비할 수 없는 미래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인공지능 학원 같은데 보내서 뭔가 대비하려고 하는건 기대만큼 효과를 보지 못할수 있어요. 대신 대처를 잘 하는 유연한 사고 방식을 가진 아이로 키우려 노력하는건 의미가 있을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이런 아이로 키우려고 하면서 동시에 과거 필요했던 대비를 잘 한.. 그러니까 공부벌레로 동시에 키우는건 어렵지 않...

아듀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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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2023년 연말에 한 해를 돌아보면서 여러모로 좋았던 해였다고 글을 남겼었다. 인생사 새옹지마 라지만 그 글을 남기고 난 뒤 지난 1년은, 그러니까 2024년은 여러모로 정말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내가 살면서 가장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여러 일이 있었고, 여러 변화가 있었다.  나쁜일만 있었느냐 하면 그 와중에도 그 나쁜일로 인해 비롯된 좋은 변화들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더 단단해졌고, 세 아이들의 사이는 훨씬 좋아졌으며 나와 아내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엄마 아빠에게 거리감을 느끼던 첫째가 그 거리감을 조금이나마 좁히는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첫째와 했던 포옹보다 많은 포옹을 올해 했고(그것도 아이가 온 힘을 다해 꽉 끌어않아주는 두터운 신뢰의 포옹), 지금까지 첫째와 나눴던 대화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내 어린 시절 이야기에 아무에게도 들려준적 없는 내 흑역사까지 포함해서 진솔한 대화를 지난 1년간 나눴다. 그러면 된 것 아닐까? 2024년을 가로지르며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던 일은, 첫째의 병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아이는 결국 이 병을 이겨낼 것이고 그후에 남는건 아이와 우리, 그리고 형제들간에 형성된 더 없이 강한 신뢰와 유대감일테니까.  2025년은 올해와 다를거라고 믿는다. 2024년 초여름 어느날 찍은 이 사진처럼, 식사 준비를 같이 하겠다며 달려든 첫째와 둘째에게 밀려난 내가 잠시 지켜보다 사진을 찍은 어느 여름날의 평범한 풍경이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올거라 믿는다. 

탄핵 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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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같이 일어나 한국 뉴스를 찾았다.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 견디기 어렵다. 다시 잠들수 있을것 같지 않아 거실로 내려와선 괜시리 벽난로를 지펴놓고 불멍하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다.   

고양이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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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블랙프라이데이 할인 품목들을 사느라 바쁜 어제,  온 가족이 동네에 있는 animal shelter 에 가서 아기 고양이를 한마리 입양했다. 애완동물을 키울 생각은 없었는데, 일종의 emotional support pet 역할로 들였다. 근본적인 입양 목적은 심한 depression 으로 찾아오는 외로움으로 밤마다 힘들어 하는 첫째를 위함인데 전부터 애완동물 노래를 불렀던 막내가 가장 신나서 다녀왔다.  Emotional support pet 으로는 고양이보다 강아지가 더 인기가 많기는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강아지를 들여서 하루 두번씩 산책시키고 털 관리 시켜가며 기르는건 현재 상황에 어려울것 같다는데 아내와 의견이 일치해서 고양이로 결정했다.  전날 쉘터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고양이들 사진을 보다 아내가 3개월짜리 고양이 한마리를 픽했는데 다른 고양이들은 모두 케이지에 있는 사진인데 한 고양이만 사람 품에 안겨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사람을 엄청 좋아하는 고양이가 아닐까 하는 아내의 추측. 눈썰미 좋은 사람의 특징은 이런 순간에도 발휘가 되나보다. 결론적으로 아내의 추측이 맞았다. 쉘터에 도착해서 마주치자마자 이 고양이는 온 몸을 케이지 철창에 비벼가며 자기를 만지라고 난리를 쳤고 그 자리에서 온 가족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 두번 고민 안하고 바로 입양 서류에 싸인했다. 정확히는 adoption이 아니라 foster care 서류. 앞으로 몇주동안 임시로 데리고 있으면서 우리 가족과 잘 맞는지 보고 최종 입양 결정을 하게 된다.  다행이 강아지 같은 특징을 가진 고양이라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이 자길 쓰다듬는걸 좋아하고, 그렇게 쓰다듬다 보면 뒤로 누워서 배를 드러낸다.  어제 저녁에도 카드 게임을 하는 첫째와 둘째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한참을 비비적 거렸는데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다.  어제밤은 첫째의 침대에서 첫째와 함께 잠을 잤는데 새벽에 아이를 깨워서 첫째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

조용한 추수감사절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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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보내는 조용한 추수감사절 아침. 매년 추수감사절은 여러 이웃들을 초대해서 큰 파티를 했기 때문에 칠면조 구이를 준비하느라 며칠전부터 바쁘고 당일 아침은 정말 부산스러웠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 아내와 둘이 이야기 하다 올해는 온전히 휴식의 시간으로 갖자는데 의견이 일치해서 이웃들을 초대하지도, 초대 받지도 않고 그렇게 보내기로 했다. 공교롭게 밖에는 비가 오고 있고 막둥이하고 나만 일어나서 식탁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오늘은 다들 늦잠 자기로 약속했는데 새벽같이 일어난 막내가 배고프다고 하는 바람에 일어나서 거실로 내려왔다. 아침으로 소고기 스테이크 먹고 싶다고 하는 막내 입맛 맞추느라 아침부터 소고기 냄새가 거실에 진동한다. 둘째도 일어나면 먹겠다고 할지도. 어제 저녁에 마트에 가서는 미국 와서 처음으로 햄을 샀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가공육 햄이 아니라, 진짜 햄. 저녁 식사에서 먹으려고 잘랐는데 가운데에 뼈가 있어서 생각했던것 만큼 예쁘게 잘리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잘라내서 오븐에서 20분정도 익힌 다음 서빙했는데 내가 알던 가공육 햄과는 식감이 많이 다르다. 먹고 남은 햄은 냉장고행. 이번 연휴동안 다 먹을수 있을지. 크기가 축구공 만했는데 그래도 어제 세 아이들이 제법 먹었다. 사진은 냉장고에 들어가 있는 햄. 어제 꺼냈을때 사진 찍었어야 모양이 예쁘게 찍혔을텐데 그때는 커다란 햄 덩어리를 다루느라 아내도 나도 우왕좌왕 했다. 사진에는 돼지고기가 같이 찍혔는데 생각해보니 돼지고기, 소고기, 햄, 닭고기 등등 고기가 종류별로 잔뜩 있다. 추수감사절 답지 않게 칠면조는 없는데 아이들이 칠면조 질렸다고 해서 그냥 이번엔 생닭을 통으로 사왔다. 저녁즈음에 꺼내서 굽기 시작할 예정. 아침을 잘 먹은 막내는 한국에 계신 할머니와 영상통화 하겠다고 해서 연결해주고 나는 앉아서 키보드 두드리는중. 막내가 무슨 이야기 하나 봤더니 얼마전 클래스가 한단계 위로 올라간 수영팀에서 얼마나 재미있는지 자랑을 하고 있다. 원래 막내는 다니고 있던 YMCA의 ...

벽난로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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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약간의 취기와 온기가 필요해서 벽난로를 지피고 와인을 한 병 열었다. 지난 겨울 이후 처음 벽난로를 지폈는데 잘 탄다. 벽난로 앞 러그에 앉아서 바닥에 와인과 안주를 차려놓고 먹고 마시는 중. 알딸딸... 하게 취기가 올라오고 약간 덥다고 느낄 정도로 벽난로 열기를 받으니 좋다.  

Wild Rob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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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셋째와 나까지 셋이서 동네 극장에 가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왔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인 Wild Robot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건데 wild robot의 열성팬(작가가 학교 방문했을때 책을 들고가서 직접 사인도 받았다)인 막내가 오래전부터 개봉하면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었다. 막내는 큰형하고 같이 보겠다며 나름 미루고 미뤘는데 여차저차 그건 포기하고 오늘 작은형과 아빠와 함께 다녀온 것.  100분짜리 짧은 애니메이션이었지만 막내는 그 사이에 웃었다 울었다 하며 스크린속 캐릭터들과 감정을 함께 공유했다. 중간중간 팝콘 먹는것도 잊지 않았고. 나도 나름 재미있게 봤다. 아이들 대상으로 만들어진 영화인 만큼 영어도 쉽고 슬랭도 없어서 알아듣기도 편했고. 보면서 앞으로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그마한 화면으로 보는 짧은 쇼츠가 아니라, 큰 화면과 훌륭한 사운드가 있는 극장에서, 빨리감기나 스킵 버튼 없이 온전히 훌륭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영상에 매몰되는 경험을 자주 하게 해주는게 분명 가치가 있는 일인것 같았다. 같은 영화라도 극장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 기껏해야 태블릿 화면으로 보는것도 차이가 크고. 큰 아이도 함께 왔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사가 있었다. "뭔가 예상 못했던 일이 벌어진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걸 해결하기 위한 네 노력이 전부란다." (극장 나올때만 해도 영어 대사로 기억했는데 지금은 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