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그리고 방긋.

며칠전 그렇게도 기대하던 이사를 했다.

오늘 내일 하고 계시던 아버지의 건강 상태로 인해 2년전에 집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급히 결혼식만 올렸었다. 덕분에 결혼후 두달동안 단칸방에서 단칸방으로 전전한 것이 도합 세번이었다. 참 힘들었었다. 나 뿐만 아니라 황망히 결혼하여 매주 이사짐을 싸야 했던 내 아내도 무척이나 힘들었으리라. 집이 너무나 좁아 혼수라고 불리우는 것들을 넣을 공간도 없어 혼수를 가져오지 못했기에 너무나 속상해 하셨던 장모님께도 죄송하기 이를데 없었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시집 보내면서 해주고 싶은 것조차 해줄 수 없으셨던 그 마음이 오죽 하셨을까.

그리고 2년만에 그 단칸방을 벗어나 이사를 했다.

이사한 곳도 방이 여러개인 집은 물론 아니다. 내가 아직 학생이고 연구비를 받는다고는 해도 사립대 이공계 대학원의 등록금을 해결하고 나면 남는게 거의 없는 상황에서 많은 돈을 모으지는 못했기 때문에 주거형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다. 대신에 복층 구조여서 아래층으로부터 침대를 분리할 수 있다.(넓은 평수가 아니라면 쓸데없이 방을 나누고, 거실을 나누고 해서 좁은 공간 두세개로 쓰는 것 보다 넓게 하나의 공간으로 쓰는게 훨씬 효율적이라는게 내 지론이다.)

이사도 참 어렵게 했다. 이삿짐 센터를 부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3만원짜리 용달차 하나 불러서 침대등의 큰 가구들만 옮기고 나머지 짐들은 전에 살던 곳의 주차장에 전부 내놓고 지키는 사람이 하나 서있는 와중에 내가 마티즈로 몇번에 걸쳐 옮겼다.(2년전 청주 어머니께서 억지로 떠넘기시다 시피 사주신 그 승용차가 없었다면 역시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점심과 저녁 식사만으로 하루종일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준 내 후배에게 정말로 고마웠다. 술 한잔 사겠다는 내 제의를 일 핑계로 거절하고 웃는 얼굴로 돌아가는데 어찌나 미안하던지. 만일 그날 날씨가 좋지 않고 비라도 왔으면 정말 어쩔뻔 했는지 아찔했던 날이었다.(전날 밤 화정동엔 가볍게 빗방울이 흩뿌려 졌었다.)

짐을 안으로 옮겨두고, 박스들을 풀어놓고 보니 너무나 썰렁했다. 전에 있던 집에선 온 집안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가득 했었는데 좀더 넓어진 평수에 침대와 책상을 복층으로 옮기고 나자 가구라고 할 것들이 서랍장 두개 밖에 없었다. 어찌나 황량하던지.

이번주에 청주에 내려가면 우리 결혼식때 액자사진 찍어 놓은 것 부터 가져와서 벽에다 걸 생각이다. 그리고 손님이 왔을 때나 우리가 식탁으로 쓸 수 있는 테이블도 하나 그렇게 크지 않은 것으로 마련해야겠지. 따로 분리된 서재를 갖는게 소원 이었던 내게 복층에 마련한 책상과 책장은 더없이 훌륭한 서재 역할을 해준다. 이미 봤거나 자주 보지 않는 책들을 치운다면 책장을 더 마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것들 만으로도 더이상 바랄게 없지만 아내는 살면서 아쉬웠던 것이 분명 있겠지. 이제부터는 차근차근 그런 것들을 채워나가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며칠동안 하고 있다. 살면서 팔베게 자주 안해준다는 것 빼고는 투정이라곤 한 적이 없는 사람. 분명 그 속에는 내게 말하지 못한 것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을테지.

아내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 하지만 결코 조급해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우리가 서로 함께할 수 있는 날들은 아직도 많이 남았고 우리가 바라는 것들은 아무리 서두른다고 해도 단시일에 이룰 순 없는 것들이니 차분한 마음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나는대로 흐름을 거스르거나 앞서지 않고 하나하나 이루어 나갈 것이다.

서로가 퇴근 후 집에서 얼굴을 마주하면 종종 나는 아내를 품에 안고 손바닥으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준다. 그러면 아내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방긋 웃는다.

토닥토닥 그리고 방긋.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말없이 애정을 표현하는 가장 짤막하면서 분명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