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사이

사람과 사람사이만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철저한 훈련을 거친 외교와 협상 전문가들이 아닌 이상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행동은 그 속내를 거진 드러내기 마련이고 감추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행동으로부터 주변인들은 그 속내를 쉽게 눈치채곤 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려운 일이 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상대의 속내를 모르는 것은 그것대로 아픔과 어려움이 될 수 있겠지만 속내를 아는 것은 그 이상의 아픔과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 상대의 속내를 짐작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내가 그것을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상대가 아는 것도, 또 전혀 그러지 않게 모른척 하는 것도(거의 불가능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생각했었다. 완벽한 감춤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어설프게 속이려 드느니 차라리 아무리 그게 사소한 약속일 지라도 원칙을 지키는 한 인간에 대한 신뢰는 깨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완벽하지 않은게 우리네 사람이고 보면 제아무리 굳건한 사람이라도 언제나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럴경우 그 잘못을 지적해주고 바르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한 크게 어긋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내 십대에서 이십대 중반까지의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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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람 사이라는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픈 진실을 외면하고자 그 진실을 지적하는 날 적으로 삼는 사람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게 뻔히 드러나는 거짓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사람들에 대한 반발심리로 논리를 무기삼아 그들을 사냥하려 드는 내 공격적 토론 성향까지. 어정쩡한 자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이들에 대한 내 직설적인 사실 지적과 진실에 대한 인정 요구는 그들에게 있어 증오와 원망의 대상이었으리라. 공포의 냄새를 맡은 맹수처럼 빠져나갈 곳을 차단한 채 숨쉴틈 없이 구석으로 몰아붙여 버렸으니까.

원리와 원칙 그리고 진실됨. 어쩌면 내가 물리학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곳에선 시스템적으로 거짓을 걸러내는 장치가 되어 있어 모든 사람들이 원리와 원칙 아래 진실을 검증받아 가며 경쟁하니 말이다.(뭐, 모두가 그런건 아니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지만)

돌이켜 보면 결국 내 주위에 남은 사람들은 남에게 솔직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 즉 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뿐이지만 그 숫자는 결코 많아질 수가 없었다. 친구의 수가 많은것이 좋은 것 만은 아니라고는 하나 세상은 친구들과만 살아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소수의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만큼 다수와 원만함을 유지하는 것 또한 필요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은 거의가 원리 원칙과 논리로 무장한 논객이 아니라 눈에 뻔히 보이는 속임수와 잘못을 웃음으로 포용할 수 있는 사람들 이었다. 어째서 잘못을 용납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인정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이십대 초반에서 그걸 이해하기 시작한 삼십대 초반까지의 시기가 내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그리고 삼십대 초반을 벗어나는 이제서야, 남의 잘못과 약점을 모른척 해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정말 걸음마를 배우는 심정으로 세상을 다시 배워 나가고 있는 요즘이다. 이 노력이 결실을 맺었으면,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