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접어드는 이 시기가 되면 온갖 종류의 소리에 감성이 고정되어 움직이질 않는다. 조임쇠가 낡아서 소리를 내는 스팀, 거리를 채우는 크리스마스 캐롤, 아내와 마주앉아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부을 때의 그 소리들.
눈까지 내린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12월도 되지 않은 지금 거리의 소란스러움을 흡수해서 내 주위의 소리만 잘 들리게 만들어 주는 함박눈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런데, 며칠전에 서울에 눈이 내렸다.
지난 몇년간 해가 바뀌도록 첫눈이 오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실망, 혹은 안도하게 만들었던 그 첫눈이 11월이 끝나지도 않은 이번주 초에 제법 많이 이 도시에 내렸다. 정작 당일은 별다른 감흥 없이 지나쳤는데 오늘, 아직 그늘진 곳에 하얗게 남아 있던 그날의 흔적 위로 하루종일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인식해 버렸다.
'아...며칠전에 눈이 왔었지.'
...라면서.
사람의 인식 체계란 참으로 간사해서 언제나 풍족할 때보다는 사라지거나, 아쉬워 질 때에야 대상에 관계없이 강하게 인식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소리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중간 삽입곡보다 엔딩곡이 가장 많은 호응을 이끌어 내고 운전중에는 항상 목적지에 도착해서 자동차의 시동을 끄기 전에 라디오에서 좋은 음악이 나온다.
그리고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같은 이유로 연말이 되면 난 온갖 종류의 소리에 감성이 고정된다. 그리고 그 시발점이 된 것은 분명 지금 이 순간 내리고 있는 첫번째 겨울비가 만들어 내고 있는 소리일 것이다.
모처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저녁이 될게 분명한 오늘은 퇴근길의 아내를 픽업해서 차분한 분위기와 좋은 선곡 덕에 기분좋게 음악을 들을 수 있어 둘 모두 좋아하는 카페로 향해야 겠다. 여름철의 장마와 달리 적당히 내리는 이 겨울의 빗소리만큼 대화를 나누기 좋은 소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