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협려(神雕俠侶)



내가 김용의 무협소설인 영웅문 시리즈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1984년인가 그럼...) 1부 6권을 하루 반나절만에 모두 읽어 버릴만큼 흠뻑 빠져버렸다. 그 이전까지 무협지라는 걸 전혀 모르고 살았는데 사촌형에게 빌린 여섯권의 책이 이후 한동안 무협지에 빠져 지내게 만들었다. 결국 3부까지 총 18권을 책을 2주만에 전부 읽어버렸다. 그때까지 많은 책을 읽었었지만 위인전과 고전소설 등이 전부였기 때문에 김용 스타일의 무협지는 내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김용의 무협소설을 섭렵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두번째로 읽었던 영웅문 2부 였다. 원제목이 신조협려(神雕俠侶)라는 건 대학에 오고 나서야 알았다. 김용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남자는 양과를, 여자는 소용녀(신조협려의 남녀 주인공들)를 특히 좋아했었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친구들이 이상형을 이야기 해보라면 ‘소용녀’라고 대답해서 친구들을 갸우뚱 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땐 주위에 무협지를 읽은 친구들도 없었고, 요즘처럼 영상물로 접할 수도 없었다. 그냥 책으로 읽고 책에 묘사된 것을 내가 상상으로 그렸던 인물인 탓에 누구에게 설명을 해 줄 수도 없었다.

얼마전 후배들과 무협지 이야기를 하다 김용의 소설들은 드라마로 수없이 제작이 되었지만 난 내가 상상했던 풍경과 인물들의 모습을 다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안본다고 했더니 후배 하나가 “형, 신조협려 2006은 꼭 보셔야 해요.” 라고 추천을 했다. 도대체 왜 그러나...하고 인터넷으로 신조협려 2006을 검색해 봤는데 눈길을 끄는 내용들이 있었다. 바로 유역비라는 여배우가 연기한 소용녀가 자신이 바로 상상했던 소용녀의 모습 그대로다..라는 감탄사들.

마침 집에서 보고 있는 IPTV에 신조협려 2006이 무료로 서비스 되고 있어서 주말에 한번 틀어봤다. 그리고는 헉....하고 숨을 들이키고 말았다. 어린시절 내가 상상했던 소용녀가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왜 사람들이 그토록 호들갑을 떨었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굉장히 여러번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신조협려지만 유독 2006년도 버전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생각됐다. 원작 소설의 팬들이 공통적으로 상상했던 소용녀의 모습을 이처럼 충실하게 재현했으니.

다만 좀 아쉬운 점 두가지는, 첫째로 유역비가 연기하는 소용녀는 고묘를 탈출하기 전과 후로 나뉘는...다시말해 감정에 눈을 뜨기 전과 후의 소용녀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냥 한결같이 넘칠만큼 사랑스럽다. -_- 뭐...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소용녀의 모습은 감정에 눈을 뜬 후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소용녀의 모습이니 다들 불만은 없어 보이지만 난 조금 아쉽다. 둘째로 너무 어려보이는 소용녀의 모습이다. 원작에서 그려지는 소용녀의 모습은 양과를 제자로 받을 당시엔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아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이고, 나이가 들어서는 단장애 계곡 아래에서 감정을 끊고 16년간 산 탓에 나이에 비해 동안으로 보이는 인물로 그려지는데(써놓고 보니...모든 여성들이-남자들 뿐만 아니라- 원하는 인물이기도 한듯?) 유역비가 연기한 소용녀는 그냥 한결같이 어려보인다. 심지어 고묘 탈출 전에도 양과보다 어려 보인다. ㅡㅜ 배우 자신이 1987년생이니 어쩔 수 없었던 건지...중국의 분장술이 부족한건지...연출자가 의도적으로 어리고 예쁘게만 표현한건지...여하튼 그 부분은 많이 아쉽다.

하지만 그런 자잘한 부분을 빼면, 원작 소설에서 표현했던 소용녀라는 인물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거의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 덕분에 이후 신조협려를 또다시 제작하려면 여배우 선택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듯 하다. 사실 유역비라는 여배우가 비교할 사람이 없을 만큼 예쁜건 아니다. 한국엔 더 예쁜 배우들도 많고 아시아 권에서 찾아봐도 수두룩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소용녀 역을 고르기 어려워 질거라 생각하는 건, 원작에서 묘사된 소용녀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이미지 때문이다.

저녁 먹기 전까지 신조협려 2006이나 좀 더 봐야겠다. 할 일이 많아 풀로 달리지는 못할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