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아내와 연애를 시작한지 20년이 됐다. 결혼한지는 17년 밖에 안됐지만, 연애하는 내내 결혼 생각을 하며 만난 탓에 그냥 20년 된 느낌이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그 세월.. 다 늘어놓을 수 없을 만큼 우여곡절이 참 많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여기까지는 헤쳐 나왔다.
둘이 이룬 가정은 그 사이 세 아이가(우리가 신혼을 오래 즐긴 덕에 세 아이들 모두 아직 어린...) 뛰어 다니는 대가족이 됐고, 삶의 터전도 미국으로 바뀌었다. 20년 전 우리에게 누가 자녀 계획과 이민 계획을 물었다면 지금과 완전히 다른 대답을 했으리라. 정말.. 삶이라는 건 정말 함부로 예측할 수 없는 존재다. 그걸 '존재'라고 부를 수 있다면.
얼마 전 아내와 차를 마시며 우리가 앞으로 겪게 될 잠재적인 risk 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가장 첫번째로 언급된게 부부싸움 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연애-결혼-출산(세번이나)-이민 이라는 네 차례의 큰 파고를 넘으며 의견이 달랐던 적은 많았으되 그것 때문에 언성을 높여 말다툼을 하거나 화를 내며 싸운 경험이 없다. 그러니 만일 20년이 지난 이제와서 싸우게 된다면.. 서로에게 그 자체로 너무나 큰, 극복하기 쉽지 않은 충격일거라는 것. 나 역시 아내와 싸우는 내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게 앞으로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서운해서 아내에게 꼭 따져야 하는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는데 아내도 비슷하지 않을까. 아내에게 화를 내는 내 모습이나, 아내가 내게 화를 내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지난 20년간 서운했던 적이 없어서.. 애초에 화를 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니 만일 우리가 싸울 정도로 큰 문제가 둘 사이에 생긴다면.. 그 뒤의 일들은 감히 상상하기 무섭다. 어쩌면 그래서 점점 더 싸운다는 선택지가 사라져 가는지도. 여튼 발생하면 큰 문제지만 어떻게 미리 대처할 방법이 없으니 risk인건 맞다. 방법있나? 그저 지금처럼 스킨십 많이 하고, 많이 표현하고, 서로 믿고 아끼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만 바랄 뿐.
내가 은퇴 목표로 잡은 나이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뒤. 지금까지 함께했던 세월 만큼 다시 보내고 나면, 우린 은퇴를 한다. 그때까지, 그리고 이후에도 사회 보편적인 통념에서의 좋은 건강을 지키며, 보편적인 통념에서의 수명까지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