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대화하기
어제 저녁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끝나고 첫째와 둘이서만 10분 가량 따로 이야기를 했다. 어려운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대화였는데 아빠인 내 관점에서 볼 때 첫째가 평소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노력해서 넘어서기 보다는 피하려고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든 자리였다.
나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아이도 짜증을 내거나 반발하지 않아 대화를 나누는 내내 차분하게 이야기가 오고 갔다. 어렵고 힘든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 외면하고 피하려 하는 태도에 대해 아이도 인정을 했고 나도 여러가지로 지금 놓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제안을 해주기는 했는데, 대화를 하면서 찜찜했던 기분이 오늘 아침까지도 이어진다. 다른 무엇보다, 내가 한 몇가지 잘못이 걸린다.
일단 적절하지 못한 말을 했다. 내가 아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눈치가 빨라서 문제가 원하는 답이 뭔지 잘 캐치해 내는 능력을 공부를 잘 하고 열심히 해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것과 혼동하면 안된다는 것과 상식이 아닌 지식은 노력해서 쌓지 않는 한 절대로 습득할 수 없다는 거였는데.. 전달하기 위해 말을 만들다 보니 아이에게 너는 과학을 잘 하는게 아니라 단지 단편적인 과학 상식이 많은 건데, 그런 상식을 드러냄으로써 똑똑하고 아는게 많다는 주위의 평가를 받는것에 도취되어 있어 보인다고 했다. 말을 뱉은 직후 아차 싶었는데...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아이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격려했어야 하는 자리에서 그만 아이의 현재를 비난하는 발언을 먼저 하고 말았다. 한가지 지식을 깊게 파고 들어 이해하는게 어렵더라도 그걸 넘어서지 않으면 지식을 습득하기 어렵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노력이 싫어 가볍게 읽고 소비할 수 있는 상식만 찾아다니면 언뜻 보기에는 아는 것 많은 사람 같지만 진짜 전문가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말을 덧붙였지만 이미 아이가 상처를 받은게 보였다. 이걸 또 수습하려고... 로봇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를 위해 최신 로봇 기술 트렌드만 잘 아는 사람과 진짜 로봇을 개발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가 바로 상식만 많은 경우와 지식을 노력해서 습득한 사람의 차이라는 변명을 했는데 아이의 눈빛은 아빠에게서 지금 "넌 로봇 엔지니어가 될 수 없어" 라는 말을 들은 것 처럼 흔들렸다. 처음에 말을 실수해 놓고 보니 이후에 도저히 수습이 되질 않았다.
더 말을 끌면 안되겠다 싶어 두번째 주제인 영어에 대해 대화를 시작했는데, 영어에 대해서도 본인이 영어가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영어 실력을 키우기 위한 별도의 노력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아빠로서 느끼는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아이 스스로 영어 실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상황을 놓고 아이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어제 마련했던 자리도 그래서 어떻게 하는게 좋겠다는 제안을 하기 위함이었고. 영어 공부를 평소 하지 않는 것 자체를 지적하기보다는 영어 실력을 더 키우는 방법만을 이야기 했어야 하는데 이 역시 생각 없이 말이 나갔다. 아이의 현재 문제를 정의하려다 그만 또다시 태도에 대한 비난을 하고 말았다.
오늘 아침, 밤사이 와서 쌓인 이메일들을 처리해 놓고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생각해보니 어떤 생각을 어떤식으로 전달할지 깊게 고민하지 않고 일단 아이를 즉흥적으로 책상에 앉혀놓고 대화를 시작한게 내가 저지른 모든 실수의 근본 원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회사 업무 미팅도 사전에 내용을 정리해보고 어떤식으로 설명할지 방향을 정한 뒤에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아이와의 대화를 너무 생각없이 가졌다. 그러다 보니 적절하지 못한 비유를 했고, 비교를 했고, 현재를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강경하거나 소리지른 것은 아니나 아이의 마음에는 깊게 베인 상처가 남았으리라. 재택 근무일이라 아이들 등교길을 함께 다녀왔는데, 첫째의 표정이 어둡다. 아이의 어두운 표정을 보며 나도 함께 마음이 무거워진다.
일단 오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다시 둘이 마주 앉아 어제 내 말에 대해 사과를 하고 원래 전달하려던 생각이 뭔지 다시 한번 정리해줘야겠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아이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방향 제시를 해줘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고민을 할 때 마다 내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인식만 깊어질 뿐 아이들에 대한 내 이해가 더 깊어지지는 않는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