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산책
어제 저녁,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나, 그리고 막내 셋이서 동네 산책을 나섰다. 꽃나무들의 꽃잎이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지 일주일째가 되어 이제는 제법 많은 꽃잎들이 땅에 떨어져 있는데 이렇게 카펫처럼 내려앉은 꽃잎들을 보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아이들도 함께 나와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첫째와 둘째는 숙제가 아직 남아 있기도 했으나 애초 이런 산책을 좋아하지 않아 이렇게 따라 나서는 경우는 대부분 막내가 유일하다. 각자의 개성이니 강요할 수 없는 문제.
그렇게 동네를 걷기 시작한지 5분. 사슴 성체 한마리가 이웃집 앞마당에 서서 경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여름털로 반쯤 털갈이를 마친 모습이었는데 희한할 정도로 꼿꼿하게 서서 우리 가족을 쳐다보고 있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 이런 모습의 사슴은 사실 대부분 한가지 경우다. 아니나 다를까. 유심히 관찰해보니 근처 수풀에 어린 새끼가 한마리 숨어서 눈치를 보고 있다. 우리 가족이 멈춰서서 쳐다보고 있자 어미가 긴장한듯 보여서 다시 걸음을 옮겨 멀어진 뒤 사진을 찍었다.
동네에서 제법 여러 종류의 야생 동물들을 마주친다. 사슴, 라쿤, 여우, 다람쥐, 토끼 등은 너무나 쉽게 마주치는 종류고 드물게는 흑곰(이건 자전거 타러 가서)도 봤고 카피바라(누군가 애완용으로 키우다 버린 것 아닐까 싶지만)도 봤다. 그러다 보니 이제 사슴을 마주치는 정도로는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사슴은 마주칠 때마다 잠시 응시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그렇게 사슴을 뒤로 하고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문득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막내의 조막만한 손을 같이 힘주어 잡아 주자 아이가 날 쳐다보며 좋다고 웃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아이들이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환경이 좋았다고 추억을 하는게 아니라 그때도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어서 그냥 당연한 일상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어쨌든 꽃도 떨어지고, 사슴도 털갈이를 하고, 새끼도 데리고 다니는 걸 보니 이번 봄도 막바지를 향해 가는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