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자 김 혜 수

모처럼 둘 모두 여유가 생긴 주말 오후, 내심 세븐 데이즈 를 보고 싶어서 찾아간 극장에서 아내가 보고 싶다고 지목한 11번째 엄마 로 급선회 했다.
남들은 어떤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현역 최고의 젊은 여배우로 생각하는 김혜수의 작품이라 나 역시 그다지 망설임은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매 작품마다 이전 작품과 전혀 다른 연기변신을 해 온 김혜수 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영화에서 요구하는 연기를 완벽하게 해 내는 모습이었다.
영화의 이야기 자체는 진부하며 지루하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갈등도,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드는 클라이막스도, 교훈과 감동을 같이 주기 위해 머리 쥐어짜 이야기를 구성하려 노력한 듯한 모습도 없다. 마치 8월의 크리스마스 처럼.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내가 받은 감동의 가장 큰 부분은 영화가 끝난 후에 있었다. 잔잔한 결말을 보고 자리를 정리하던 중 올라가는 cast 소개에서 김진성 감독이 준비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봤다. 다름아닌, 배역 소개 부분에 이르러서 김혜수의 이름이 나올 때
여 자 김 혜 수
라고 나온 것이었다. 그랬다. 영화에서 김혜수가 연기한 인물은 단 한번도 이름이 나오질 않았었다. 그저 '그 년'으로 불리웠을 뿐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채 '그 년'으로, '아줌마'로, 하지만 마지막에는 '엄마' 로 불리웠던 극중 인물에게 감독은 '여자' 라는 이름을 붙여준, 아니 돌려준 것이다.
여자, 그리고 엄마.
쉽게 표현하기 힘든, 하지만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짙은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를 오랜만에 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