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소리
가족 블로그에는 며칠째 포스팅 중이지만, 아내와 둘이 샌디에고를 여행 중이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아내는 샤워를 마치자 마자 잠이 들었고 나는 맥주를 한캔 뜯어서 마시면서 책을 읽고 있다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곳은 지금 밤 10시다. 침대에 누워 스탠드만 하나 켜 놓은채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자니 문 쪽에서 호텔 내 수영장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그리고 다이빙 하느라 텀벙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창 밖에서는 California Amtrak(기차 노선이다)이 샌디에고 시내를 지나면서 울리는 기적 소리가 맑게 울려오고 있다. 결정적으로 빠-앙- 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가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키보드를 두드리게 만들었다. 일상적이지 않은 풍경. 일상적이지 않은 소리.
기차의 기적 소리는 여행을 상징한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있는 현대 사회에서 기차가 유일한 장거리 운송 수단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도 기차의 기적 소리만큼 여행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은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94년 이었는지 95년이었는지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94년에서 95년을 가로지르는 그 겨울의 복판에 나는 친구와 배낭을 메고 동해안의 한 해변에 앉아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 입학이 결정된 후 친구와 둘이 떠난 배낭 여행이었다. 아침 일출을 보고자 했던 노력이 두터운 수평선의 구름 탓에 실패로 돌아가고 둘이 커다랗게 철썩 몰아치는 파도를 보며 해변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때 우리 등 뒤로 기차가 지나가면서 기적을 울렸었다. 뒤 돌아보니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고 기차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 중 일부가(주로 어린 아이들이었지만)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기차의 기적 소리와 여행의 첫번째 매듭이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그 장소로부터 수천km 떨어진 타국에 여행을 와 문득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를 듣는 순간 파도가 치듯 15년전의 그 기억이 되살아 났다. 일상적이지 않은 풍경과 일상적이지 않은 소리.
어느새 더없이 강렬한 현실이었던 일들이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 될 만큼 오래전 기억이 되어 버렸다. 기억이라는 것이 내 안의 가장 내밀한 곳에, 동시에 가장 멀리 있는 모순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과히 좋은 경험이 아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참으로 간사해서 남아있는 순서도 ㄱ,ㄴ,ㄷ 순서가 아니지만 남겨진 기억들의 존재도 늘 징검다리와 같다. 강렬한 기억과 현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존재하겠지만 남아있는 것들은 늘 멀찍이 놓여있는 디딤돌 몇 개 뿐이다. 기억과 기억 사이의 긴 시간을 생각해보면 허무할 정도로 남아있는 기억들이 적다. 노인이라면 세월이 너무 빨리 흘렀다고 말 할 테고 어린아이라면 아무 인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30대인 나는? 기억력이 나쁘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지 떠오르지 않는 다는 점에서 허무하다고 말을 해야 하는 걸까.
결론은 없다. 타향에서 듣는 기적 소리가 불러온 기억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나를 이끈 것일 뿐. 내일도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현재에 충실하고 과거에 후회하지 않으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분명 미래의 어느 시점에 나는 또다시 지금처럼 후회하지는 않지만 허무하다고 말하면서 내 과거를 되돌아 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일컬어 '삶' 이라고 짤막하게 부를 것이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아내는 샤워를 마치자 마자 잠이 들었고 나는 맥주를 한캔 뜯어서 마시면서 책을 읽고 있다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곳은 지금 밤 10시다. 침대에 누워 스탠드만 하나 켜 놓은채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자니 문 쪽에서 호텔 내 수영장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그리고 다이빙 하느라 텀벙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창 밖에서는 California Amtrak(기차 노선이다)이 샌디에고 시내를 지나면서 울리는 기적 소리가 맑게 울려오고 있다. 결정적으로 빠-앙- 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가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키보드를 두드리게 만들었다. 일상적이지 않은 풍경. 일상적이지 않은 소리.
기차의 기적 소리는 여행을 상징한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있는 현대 사회에서 기차가 유일한 장거리 운송 수단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도 기차의 기적 소리만큼 여행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은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94년 이었는지 95년이었는지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94년에서 95년을 가로지르는 그 겨울의 복판에 나는 친구와 배낭을 메고 동해안의 한 해변에 앉아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 입학이 결정된 후 친구와 둘이 떠난 배낭 여행이었다. 아침 일출을 보고자 했던 노력이 두터운 수평선의 구름 탓에 실패로 돌아가고 둘이 커다랗게 철썩 몰아치는 파도를 보며 해변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때 우리 등 뒤로 기차가 지나가면서 기적을 울렸었다. 뒤 돌아보니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고 기차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 중 일부가(주로 어린 아이들이었지만)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기차의 기적 소리와 여행의 첫번째 매듭이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그 장소로부터 수천km 떨어진 타국에 여행을 와 문득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를 듣는 순간 파도가 치듯 15년전의 그 기억이 되살아 났다. 일상적이지 않은 풍경과 일상적이지 않은 소리.
어느새 더없이 강렬한 현실이었던 일들이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 될 만큼 오래전 기억이 되어 버렸다. 기억이라는 것이 내 안의 가장 내밀한 곳에, 동시에 가장 멀리 있는 모순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과히 좋은 경험이 아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참으로 간사해서 남아있는 순서도 ㄱ,ㄴ,ㄷ 순서가 아니지만 남겨진 기억들의 존재도 늘 징검다리와 같다. 강렬한 기억과 현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존재하겠지만 남아있는 것들은 늘 멀찍이 놓여있는 디딤돌 몇 개 뿐이다. 기억과 기억 사이의 긴 시간을 생각해보면 허무할 정도로 남아있는 기억들이 적다. 노인이라면 세월이 너무 빨리 흘렀다고 말 할 테고 어린아이라면 아무 인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30대인 나는? 기억력이 나쁘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지 떠오르지 않는 다는 점에서 허무하다고 말을 해야 하는 걸까.
결론은 없다. 타향에서 듣는 기적 소리가 불러온 기억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나를 이끈 것일 뿐. 내일도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현재에 충실하고 과거에 후회하지 않으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분명 미래의 어느 시점에 나는 또다시 지금처럼 후회하지는 않지만 허무하다고 말하면서 내 과거를 되돌아 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일컬어 '삶' 이라고 짤막하게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