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와인



빈티지 와인을 따면, 불가항력적으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애초에 만들어진 연도가 큼직하게 적혀 있는 그런 와인 라벨이나 콜크 마게를 보면서 아무런 감흥 없이 거기에 적힌 그 선명한 "연도" 를 지나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런지.


과거에 대한 기억은 마치 잔뜩 흔들어 버린 샴페인과 같아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함이 없지만 약간의 자극 만으로도 뚜껑이 열리고, 그리고 그런 자극에 의해 뚜껑이 열린 샴페인은 사람의 손 힘으로 막을 수 없다. 그저, 더 이상 나올게 없을 때까지 온 사방에 하얗게 거품과 자신의 향을 뿜어낼 뿐이다. 그런 자극이 어떤 것이 있을지 미리 생각해보고 알아서 조심하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피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누가 일부러 언급을 했든 관계없이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넘쳐나는 생각의 분출과 홍수를 막을 수 없기 때문.


누군가는 추억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과거에 대한 집착이라고 말한다.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누구의 말이 더 타당한지 따져보는 건 제 3자가 아닌, 뚜껑을 열어버린 당사자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미 다 젖어버린 그 옷을 벗지도 못하고, 입고 있지도 못하면서 어정쩡하게 피식 웃음 지을 수 있을 뿐.


오늘, 무심코 연 콜크 마개에서 잊고 있던 기억을 하나 잡았다. 그리고, 어떻게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 거품과 함께 뿜어져 나온 시간의 분출에 흠뻑 젖어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취하게 만든게 와인인지, 아니면 뿜어져 나온.. 잘 묻어 두었던 시간들인지 모르겠지만 잠이 들 수 있기까지 무척 긴 밤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