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le Malt Whi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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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cDomainPictures @Pixabay] |
잠이 오지 않아 베이스먼트에 내려와 내 크롬북을 열고 앉았다. 잠이 오지 않으면 책이라도 읽으면 되련만, 무료할 때 선택하는게 읽는 쪽이냐 쓰는 쪽이냐를 따진다면 나는 확실히 쓰는 쪽이다. 킨들을 샀을 때 보다 내 개인 크롬북을 샀을 때 더 기뻤던 이유가 그것이리라.
지난주부터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다. 피곤하고, 몸 여기저기 쑤시고, 약한 두통도 중간에 있었다. 잠시 혹시 Covid-19 에 걸렸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다행이 증상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냥, 최근 업무량은 많고 운동량은 줄어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는 쪽으로 생각하는 중. 컨디션이 전반적으로 많이 나쁘다 보니 눈도 침침해서 책을 읽는것도, 쓰는 것도 불편하다. 좀 쉬어야 겠다는 생각에 초저녁부터 침대에 들어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업무 전화를 받고 일어나 한참 일을 해야 했고, 어설프게 자다 일어난 탓에 자정이 넘은 지금까지 다시 잠들지 못하고 도리어 더 엉망이 되어 버렸다. 전화기를 꺼 놨어야 했다. 늦었지만.
베이스먼트로 내려오는 길에 위스키잔을 꺼내와 애정하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한잔 옆에 따라 두었다. 항상 느끼지만, 와인은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묵직한 자주색을 느낄 때 매력적이고 위스키는 대비가 높은 조명 아래에서 밝은 황금색을 느낄 때 매력적이다.
위스키는 사색을 위한 술이고, 와인은 대화를 위한 술이다.
언제부턴가 입에 달고 사는 술에 대한 내 주장. 처음 그 생각을 했던 건 개봉 후 장기간 보관이 쉬운 위스키가 개봉하면 무조건 다 마셔야 하는 와인보다, 주량이 약한 그리고 떠들썩하게 여럿이 함께하는 회식보다 집에서 혼자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내게 더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 사실 퇴근 후 혼자 음악을 들으며 한잔 가볍게 하기에 위스키만한 술이 없다. 와인은 개봉을 하면 맛이 하루만에 변하기에 본래의 맛을 유지하면서 마시려면 개봉했을 때 다 마셔야 해서 혼자 마시기에는 양이 많다. 그래서 와인은 여럿이 대화를 하며 나눠 마실 때 가장 적절하다. 그러니까, 내게 와인은 계륵같은 술이다. 좋아하지만, 어딘가 마시기 불편한. 아내는 술을 마시지 않으니 와인을 처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글을 쓰면서 마시기에는 위스키 이상의 술이 없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이 바로 그렇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술 자체의 특징도 와인은 대화에 더 어울린다. 목과 입술을 축여가며 마실 수 있는. 위스키를 그렇게 마시면 고주망태가 되기 쉽다.
위스키를 마실 때 잔을 세번 정도 들어 올리면 실제로 한모금 마시는 건 그 중 한번이다. 나머지 두번은 잔을 들어 향만 맡고 다시 내려 놓는다. 내가 싱글몰트 위스키를 고집하는 이유. 숙성된 질 좋은 싱글 몰트 위스키에서만 나는 그 향이 참 좋다. 한모금 입에 머금을 때 느껴지는 위스키의 짜릿함 보다도 그 향이 좋아 싱글 몰트를 찾는다. 분명 어렸을 때는 위스키에서 향이 아닌 알콜 냄새만 잔뜩 났는데 언제 이 향을 즐기게 되었는지. 나이 들면서 다른 그 어떤 술보다 위스키를 즐기시는 어머니의 취향을 닮아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직은 와인이 더 좋지만, 50대가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업무 출장으로 타향살이가 1년의 절반 가까이 되던 시절. 출장지에서의 유일한 낙은 일을 마친 후 호텔로 돌아와 마시는 한잔의 술이었다. 미국은 호텔들이 모두 별로라 운 좋으면 탭에서 받은 블루문을 한잔 하는 수준이었지만 중국 출장을 가면 같은 budget으로 별이 많이 붙은 호텔을 이용할 수 있어 항상 호텔 비지니스 라운지에서 위스키를 즐길 수 있었다. (3대 호텔 체인 모두 호텔의 라운지를 무료 이용 가능한 등급을 유지했던 출장 일수에 묵념을) 운이 없어 비지니스 라운지가 없는 호텔을 이용하는 경우라도 보통 위스키바는 대부분 갖추고 있었는데, 거기에 앉아 가져간 책을 읽으며 한잔 하는 그 30분에서 한시간 정도의 시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런 바에서 와인은 사실 복불복이다. 그러나 대부분 유명한 싱글몰트 위스키는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위스키를 마시고자 했을 때 실패한 경험은 없다. (개봉 후 보관성이 좋다는 장점은 여기서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왜 그렇게 서둘러 잔을 비우고 호텔방으로 돌아가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뭐..그러지 않았으면 시달렸을테니 그랬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맡은 일을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만 버렸다면, 주위의 평가에서 벗어나 훨씬 여유롭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참 아까운 기회였던게, 위스키를 한잔 하면서 책을 읽는데 호텔 라운지 또는 위스키바 만한 장소가 없다. 좋은 분위기에서 많은 책을 읽을 기회였는데 그걸 놓쳤다. (단언컨데, 도서관이나 그 어떤 장소보다 위스키바가 책을 읽기에 좋은 곳이다. 해 본 사람은 안다. )
술이 약간 오르면 늘 그렇지만, 글이 그립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일들을 하나하나 글로 풀어 대단치 않은 일들을 대단치 않게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쓰는, 그런 글이 그립다. 그리고 그 글의 대상이 바로 '나' 인 그런 글. 길게 풀어 썼는데, 두 단어로 옮겨 적어보면 '편지가 그립다'. 대화는 쉽게 하는 사람들이 그걸 글로 옮기는 걸 어려워 하는게 더 이상 내게 미스테리는 아니다. 다들 그러니까. 이해는 가지 않지만 납득은 되는, 뭔가 모순적인 입장이지만. 작년까지는 그래도 메일로 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두명은 됐는데, 이제는 한 명 남았다. 카톡, 페이스북 등등 짧은 호흡의 글이 아닌 긴 호흡의 글을 내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아쉽지만, 그래도 한명이라도 있는게 어딘가 싶다. 이 나이에 누가 펜팔 하자고 연락을 해 올 것도 아닐테고.
다행이, 말이 길어지는 시점에 약간 졸리기 시작한다. 술을 마셔서인지 시간이 늦어서인지 모르겠으나 이제 침대로 들어가면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Good night.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