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 항공권
"아니다 싶으면 다시 비행기 타고 돌아오죠 뭐."
이민을 결심하면서 아내와 한 대화. 비행기에 오를 용기를 내기 위해 우리는 이 말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법의 주문처럼 외우면서 다녔고 부모님들도 똑같은 말을 주문처럼 달고 사셨다. 아니다 싶으면 훌훌 털고 돌아오라고.
이때는 '돌아온다' 는 단어에 실린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떠난 그 장소에 다시 서 있게 되면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민은, 편도 항공권이지 왕복 항공권이 아니라는 그 선명한 사실을.
내가 간과했던 건 아이들이었다. 나와 아내는 정 이민 생활이 힘들고 적응이 안된다면, 생활 수단이 고민되긴 하겠지만 그냥 털고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내 아이들에게는 '이민' 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힘들고 적응하지 못해서 포기한 이민 생활을 내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상황이 된다는 생각을 못했다. 더구나 미국에 비해 한국은 소수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문화. 이 때문에 같은 이민이라면 한국에서의 적응이 더 어렵다.
그래서 가정을 이룬 뒤에.. 뒤늦게 여행 가방을 들고 비행기에 오르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역이민이 이민보다 더 고민되고 어려운 건 분명한 사실. 내가 결심하고 내 의지로 실행한 이민도 견디기 어려운데 내 의지와 관계없이 강요된 이민은 더 어려운 법이다. 특히 자아가 분명해지는 사춘기 자녀들의 경우 그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감정적인 어려움이 부모보다 더 클 수 밖에 없다. 내 주위만 봐도, 그렇게 돌아가서 잘 적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들이 적응하지 못해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동네에는 역이민을 시도했다가 아이가 적응을 못해 다시 미국에 눌러 앉은 한국인 가정도 있다. 내가 이민을 나올때 쯤 오랜 주재원 근무 후 복귀한 동료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자녀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었다. 태어나기는 한국에서, 성장은 미국에서 하면서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애매한... 하지만 그래도 미국에서는 이민 가정 자녀라는 나름의 정체성을 간신히 유지하던 그 아이들은, 한국에 돌아간 이후 이젠 정말 자신이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 방향을 잃었다. 미국에선 부모도 자신도 이민자였는데 한국에 왔더니 자기만 이민자라는 자각. 뿌리라 듣고 자란 한국에서 자신이 이방인이고 문화적으로 타인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사춘기 예민한 아이들이 혼란에 빠지는게 유별난 일은 아닐게다. 자기는 미국인인데 왜 한국에서 살아야 하냐며 대들었다는 그 집 아이들의 이야기는 내 가슴 한켠을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부모의 잘못도, 아니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아이들은 힘든 상황.
그걸 깨달은 뒤, 나와 아내는 한국에 남겨놓은 우리의 미련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정리. 그리고 이번주, 마침내 한국 통장에는 교통비 정도로 쓸만한 푼돈만 남겨놓고, 현금화한 거의 모든 자산을 미국 주거래 은행으로 옮겼다. 한국을 떠나면서도 한발 걸쳐놓을 수 있는 무언가 필요한 마음에 남겨 두었던 집도 정리했다. 전부 현금화 해서 미국에 옮겨놓고 보니, 그렇게 아둥바둥 살았는데 모은게 이거구나 싶어서 조금은 허탈하기도 하다.
어쨌든, 돈이 뭐라고, 이제 내 삶의 무게중심은 물론이고 내 뿌리의 대부분도 미국으로 넘어온 느낌. 여행가방 들고 비행기 탔다고 이민 가는게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마음을 정리하는데 2년이 넘게 걸릴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2년하고 6개월. 이제야 본격적으로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