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공동체
남에게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첫째가 미국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맞든 틀리든 자꾸 말을 해야 영어도 늘고 친구도 생기는 법인데, 본인이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에 말을 안하려 들고.. 그러다 보니 친구도 쉽게 사귀지 못하고 있는 중.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지 3년이나 됐으니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와 질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입을 떼기 어려워 한다. 이게 성격이라 어떻게 내가 가르쳐서 바뀔 부분이 아니다.
어떻게 이걸 도와줘야 하나 긴 시간 고민중인데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매일 저녁 내가 writing을 봐주고 있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고 튜터를 붙여 주자니 단순히 학습이나 영어의 문제라기 보다는 또래와 어울리는 사교의 문제도 섞여 있어서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웃들과 이런 고민을 공유한 직후에 갑자기 도움의 손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가까이 지내는 한 이웃의 첫째가 대단히 활동적인 8학년 남학생인데 자기가 아이의 멘토가 되어 주겠다며 나서서 매주 주말 오후 그 집으로 첫째를 보내서 함께 골프를 치게 하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냥 그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항상 첫째로서 부담을 느끼며 지내야 했던 아이였는데,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형이 골프도 가르쳐주고, 또 둘 다 수영을 하는 덕에 수영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아니면 같이 게임을 하면서 몸으로 어울리다 보니 그 시간이 무척 즐거운 듯 했다. 다녀오면 표정이 확연하게 밝다. 여기에 더해서 가까이에 사는 다른 이웃의 10학년 여학생이 공부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일주일에 두번씩 쓰기와 말하기를 봐주겠다고 했는데 마침 그 집 둘째가 우리집 둘째와 같은 반이라 겸사겸사 둘째는 친구 만나서 놀고 첫째는 공부 잘 하는 누나에게 수업을 받게 됐다. 튜터 비용을 이야기 하니 그 집 엄마가 극구 사양한다. 자기 아이도 처음 누군가를 가르쳐 보는거라 받지 않겠다고.
그 두 집 아이들도, 우리집 아이들도 서로를 안다. 누가 어느집 살고, 누구 형이고, 누구 동생인지. 여기에 더해서 부모들끼리도 서로 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도움을 받고 보니 이웃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8학년짜리 남자 아이도, 10학년 여자 아이도 우리집 첫째의 이야기를 부모로부터 전해 듣고 모두 자신들이 도와주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선 거라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맙다. 더구나 10학년이면 이제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할 시기일텐데 이렇게 아이가 나서서 다른 집 아이 공부를 도와주겠다고 하는 걸 흔쾌히 허락하는 그 집 부모들의 태도도 놀라웠고. 이야기 들어보니 이런식으로 친한 형이나 누나, 언니, 동생들끼리 멘토가 되어주고 함께 어울리는게 드문 일은 아니라고 하는데 우리 부부에게는 아직 놀라운 일이기만 하다. 사실 그 아이들에게 첫째가 도움을 받는다는 것 자체보다(운동과 공부 양쪽으로) 그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함께 어울리는 법을 아이가 배우고 있는게 더 기쁘다. 그 8학년 남학생도 자기가 따르는, 이제는 대학생이 된, 멘토 형이 있다면서 자기가 받은 도움을 같이 나누는 거라는 입장이다. 아이가 그걸 보고 배우고 있는거다. 이런 걸 값을 매긴다면 얼마를 매겨야 하는 걸까.
확실히 한국보다 이곳이 외롭다. 삶도 팍팍하고.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토록 많은 지인들과 이웃들에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이웃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여기서는 거꾸로 이웃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받기만 할 수는 없고 나도 함께 나눠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