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play
요즘 부쩍 코딩에 자신감이 생긴 첫째가 친구들과 함께 Zoom 그룹을 만들어 scratch coding play를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원래 있는 그룹에 첫째가 참여한 것. 어른들의 개입 없이 자기들끼리 게임을 만드는 그룹이다. 작년에 한번 잠깐 초대를 받아 참석했던 적은 있는데 이후 별 말이 없다 최근에 생각이 바뀌어서 오늘부터 참석하기 시작했다.
구성원들의 나이는 다양한데, 3학년부터 5학년까지 분포되어 있다. 내게는 신기한 조합인데... 어쨌든 한국 같으면 같이 어울리기 어려운 나이 분포지만 여기서는 나이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잘 어울린다. 심지어 사람들을 모으고 그룹을 만들어서 PM 역할을 하는 아이와, 미팅 호스트를 하면서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하는 아이들은 가장 어린 3학년들이다. 나이 어린 동생들이 그룹을 리딩하는 것에 대해 첫째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는데, 아이는 그걸 상하관계가 아닌 역할이 서로 다른 수평 관계로 인식하고 있었다. 저 아이는 프로젝트 관리를 하고 나는 코딩을 주로 하고.. 와 같이. 오히려 자기는 저런거 귀찮아서 싫고 코딩만 신경쓰고 싶은데 그 귀찮은 걸 해주니 좋다는 식. 나는 무심코 상하관계.. 지시하고 수행하는 관계로 받아들였는데 입 밖에 내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
특히 미팅 호스트 역할을 하는 3학년 짜리 여학생은 보고 있자면 우리 회사로 데려와서 프로젝트 매지니먼트 팀에 인턴으로 합류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한다. 공동 프로젝트 기능이 없는 스크래치를 이용하는 탓에 한명이 작업한 걸 다른 사람들이 리뷰하기가 좀 번거로운데 Zoom의 화면 공유 기능을 번갈아가며 서로 사용해서 자기 코드를 보여주고 토론하면서 어찌어찌 해 가는데 속도는 느리지만 급할 것 없는 프로젝트라 다들 즐겁게 한다.
지켜보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두가지 있는데,
첫째는 이 그룹의 실질적인 수석 개발자 역할을 하는 아이는 발달 장애가 있다. 신체를 움직이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고 말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천천히 말을 하는 것은 둘째치고 발음도 어눌하다. 한때 코미디 프로의 소재로 사용되어 많은 발달장애아 가족을 가슴아프게 했던 맹구 같은 캐릭터가 이런 아이들을 희화한 캐릭터다. 몸이 불편하다 보니 마우스와 키보드를 다루는 것도 빠를 수가 없어 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울릴 때 보면 그런 부분을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 말을 끝내는 것을 끈기있게 기다려 주고 경청한다. 그런 기다림 속에 그 아이는 자기의 실력을 100% 발휘하고 프로젝트 전체가 도움을 받는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그룹의 모두가 그 아이의 실력을 respect 하고 있는게 보이고, 장애를 가진 그 아이가 놀림이나 따돌림의 대상이 아닌 피부색이 다른 친구처럼 자기와 조금 다른 친구일 뿐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게 부모인 내 눈에 보인다. 누군가 프로젝트를 느리게 만든다고 하여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는다' 는 미국 문화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두번째는, 아이들이 노는 문화가 Covid-19을 기점으로 정말 크게 바뀌었다는 점. Covid-19으로 인한 격리 단계가 내려가면서 이제 다시 운동장에 모여 어울리기도 하지만 Zoom 과 같은 툴을 이용해서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횟수가 훨씬 많다. 첫째처럼 여럿이 모여서 코딩을 함께 하기도 하고, 둘째는 친구와 Zoom으로 연결해서 대화를 하고 함께 이야기 만들기 놀이를 한다. 다른 가족 이야기를 들어보면 zoom으로 서로 연결해서 자기가 듣는 음악을 같이 듣거나 영화를 함께 보면서 수다를 떠는 것 정도는 이제 흔한 광경이 됐다. 아이들 반 친구들 끼리도 Zoom 링크를 자기들 학급에서 이용하는 구글클래스 게시판을 이용해 share하고 수업후에 원하는 아이들이 정해진 시간에 접속해서 어울린다. 첫째가 참여하기 시작한 코딩 그룹도 부모들에게 셋업을 부탁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미팅 셋업을 하고 참석자들에게 invite를 보내서 알아서 한다. 만일 Covid-19이 없었다면 이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온라인 협업 툴에 익숙해졌을거라 생각하기 어렵다. 간혹 어린 나이부터 지나치게 네트워크를 통한 교류에 노출되는 것 아닌가 해서 걱정되기도 하지만 이 아이들은 그런 세대라는 생각에 막지 않고 있다.
여튼, 첫째는 얼마전에 완성한 3D 엔진(프로그램 이름이 뭐더라. 버전명까지 붙여놨던데..) 을 친구들과 게임을 만드는데 적용해 보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지난주에 코드를 자세하게 살펴보고 아이에게서 설명을 들어본 바에 따르면 몇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서 어려움을 많이 겪거나 실패할거라고 생각이 들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가 얻는 것이 많을거라 생각되서 기대가 크다. 그래서 일부러 고쳐주거나 문제점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기본적인 데이터 처리를 위한 알고리즘을 조금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sorting 이라던가.. 뭐 이런 기본적인 것들. 내가 재미삼아 3D 엔진을 처음 만들어 본게 22살때였으니까.. 정말 세대가 달라졌다. 툴도 많이 달라졌고. 무엇보다, 환경이 다르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놀이처럼 즐기는 코딩이라니. 이런건 학교나 학원 수업시간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이 아이들이 만들어가고 살아갈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정말 기대된다. 부디 우리 세대가 저지른 많은 잘못들을 고쳐나가는 능력 있는 세대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