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의 step up
올 한해 진행했던 주요 프로젝트 두개가 모두 업계 매거진에서 주는 제품 혁신상을 받았다. 출시 뒤의 초기 시장 반응도 좋고 회사 내부 평가도 좋다.
하나는 내 전임자가 2년간 개발했으나 실패하고 레이오프된 프로젝트를 갈아 엎고 새로 시작한거고(엄밀하게 말하면 그 전임자의 덕을 봤다. 그가 기록했던 수많은 실패의 로그들이 나로 하여금 지뢰밭을 요리조리 빠져 나갈 수 있게 해줬으니까.), 하나는... 이게 정말 힘들었는데 제품 담당 PM부터가 실패해도 개발탓은 아니라고 할만큼, 회사의 모든 사람이 말도 안되는 요구 조건이라고 할 만큼 까다로왔다. 제품을 개발하는게 아니라 SCM부터 시작해서 거의 세그먼트 하나를 전부 새로 디자인했는데 삼성전자에서 상품기획을 해본게 정말정말정말 큰 도움이 됐다.
결과적으로 성능 다 맞추고 개발비 요구 조건도 맞췄다. 제품 가격은 요구 조건보다 더 낮췄고 물류 및 재고 비용은 목표를 넘어 1/30까지 줄었다. 당장 회사 경영진들 사이에서 이 제품 못팔면 영업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언급되고 있고. 그리고 어제는 이사회 의장으로부터 지난 2년간, 그러니까 내가 개발을 맡은 뒤 개발팀의 변화에 매우 흡족하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 어려운 프로젝트를 성공 시켰다는 개발자로서의 뿌듯함보다 '이제 쉽게 짤리진 않겠구나' 하는 이민자로서의 안도감이 더 크다. 요즘 회사내 입지가 탄탄해졌음을 피부로 느낄 정도니까 실수 한두번에 레이오프 되진 않을거라는 자신감이 든다. 한가지 더 바란다면, 부디 영업이 대박을 쳐서 이 제품을 당당히 내 이력서에 넣을 수 있기를.
어제밤 chairman의 메일을 받고 나서 와인 한잔 할까 하다 그냥 베이스먼트에서 즈위프트에 로그인 해서 땀을 한바탕 흘리고 올라왔다. 즈위프트를 시작하기 전에는 매번 혼자 그래블 코스를 호젓하게 달리던 입장이라 어쩌면 사람들이 이렇게 잘 달리는지 신기할 따름. 그래도 낑낑대며 페달을 굴리고 있는 나를 지나쳐 가는 저 그룹의 누군가 내게 날린 👍 이 기분 좋았다. 그게 뭐라고.
지난달 뉴욕에서 만난 전직장 동료들이 적응한것 같냐고 물었었는데... 이제는 미국에서의 삶에 적응한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아침에 눈을 떴을때 회사에서의 일 걱정으로 불안하지 않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심적으로는 한단계 더 계단을 올라섰다.
어쨌든, 이번 땡스기빙에서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연말은 조금 여유있게 보내도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