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s
Scene #1
대관령을 넘다 차가 멈춰 버렸다. 미션에 문제가 생긴 듯 엔진소리만 우렁차지 힘이 차에 전달되지 않아 차를 몰고 갈 수 없었다. 비상등을 켜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견인할 차량을 요청했다. 아내와 차 안에서 견인 차량을 기다리며 30분간 본의 아니게 대관령을 넘는 차들을 구경하게 됐다. 평소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면 늘 오전에 움직여서 차가 거의 없었는데 확실히 오후가 되니 엄청나게 많은 차들이 대관령을 넘고 있었다.
Scene #2
강릉의 대우정비사업소 까지 차를 견인한 후 수리를 의뢰해 놓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올라오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휴일이어서 차 수리가 안되는 탓에 천상 강릉에 차를 두고 다음주나 그 다음주 주말에 강릉에 한번 더 가서 차를 찾아올 수 밖에 없게 됐다. 어차피 강릉에 한번 더 내려가야 했으니 상관은 없지만 덕분에 이번주와 길면 다음주까지 차 없이 지내게 됐다. 횡계에 있는 애니카 서비스 센터와 강릉 대우정비사업소를 거치면서 입을 벌리고 정비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차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봤다. 문득 새끼 펭귄들이 생각났다. 지나친 연상 작용인가.
Scene #3
강릉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라타고 버스 안을 둘러보는데 모두가 젊은 사람들이었다. 한보따리씩 무언가를 들고 짐칸에 그것들을 싣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버스 창 밖을 바라보니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버스를 둘러싸고는 버스 안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밖의 어르신들과, 버스 안의 젊은이들. 짐칸에 싣느라 낑낑거리는 저 검은색 비닐로 쌓여 있는 큼지막한 사각형 물건이 김치통일 것이라는 확신이 갑자기 들었다.
Scene #4
화정 터미널에 도착해서 짐을 들고 건물을 빠져 나오면서 흘깃 둘러본 터미널 대합실에서 오도카니 대합실 의자에 앉아 옆에는 여행용 슈트 케이스를 세워놓고 몸을 웅크리고 있는 여자를 봤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디에선가 도착해 자신을 마중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TV 화면의 불빛이 그 여자의 얼굴에 비춰져 어딘지 모르게 창백해 보였다. 그 여자의 기다림이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마중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기를 스쳐가는 수초의 시간동안 바래 보았다. 떠나기 위한 기다림은 너무 슬프다.
대관령을 넘다 차가 멈춰 버렸다. 미션에 문제가 생긴 듯 엔진소리만 우렁차지 힘이 차에 전달되지 않아 차를 몰고 갈 수 없었다. 비상등을 켜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견인할 차량을 요청했다. 아내와 차 안에서 견인 차량을 기다리며 30분간 본의 아니게 대관령을 넘는 차들을 구경하게 됐다. 평소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면 늘 오전에 움직여서 차가 거의 없었는데 확실히 오후가 되니 엄청나게 많은 차들이 대관령을 넘고 있었다.
Scene #2
강릉의 대우정비사업소 까지 차를 견인한 후 수리를 의뢰해 놓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올라오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휴일이어서 차 수리가 안되는 탓에 천상 강릉에 차를 두고 다음주나 그 다음주 주말에 강릉에 한번 더 가서 차를 찾아올 수 밖에 없게 됐다. 어차피 강릉에 한번 더 내려가야 했으니 상관은 없지만 덕분에 이번주와 길면 다음주까지 차 없이 지내게 됐다. 횡계에 있는 애니카 서비스 센터와 강릉 대우정비사업소를 거치면서 입을 벌리고 정비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차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봤다. 문득 새끼 펭귄들이 생각났다. 지나친 연상 작용인가.
Scene #3
강릉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라타고 버스 안을 둘러보는데 모두가 젊은 사람들이었다. 한보따리씩 무언가를 들고 짐칸에 그것들을 싣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버스 창 밖을 바라보니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버스를 둘러싸고는 버스 안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밖의 어르신들과, 버스 안의 젊은이들. 짐칸에 싣느라 낑낑거리는 저 검은색 비닐로 쌓여 있는 큼지막한 사각형 물건이 김치통일 것이라는 확신이 갑자기 들었다.
Scene #4
화정 터미널에 도착해서 짐을 들고 건물을 빠져 나오면서 흘깃 둘러본 터미널 대합실에서 오도카니 대합실 의자에 앉아 옆에는 여행용 슈트 케이스를 세워놓고 몸을 웅크리고 있는 여자를 봤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디에선가 도착해 자신을 마중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TV 화면의 불빛이 그 여자의 얼굴에 비춰져 어딘지 모르게 창백해 보였다. 그 여자의 기다림이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마중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기를 스쳐가는 수초의 시간동안 바래 보았다. 떠나기 위한 기다림은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