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아라비카'
버스 터미널에 있는, 지나가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아니라면 어느곳이나 기억에 남는 단골은 있기 마련이고 그런 가게일수록 그런 단골들 또한 기억이 아닌 추억을 그곳에 묻어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유행한게 몇년 전부터일까? 흔히 말하는 다방커피가 아닌 제대로 된 핸드드립이 유행하기 시작한지 말이다. 오년? 십년? 과연 십년 전에 핸드드립이라는 방식의 커피를 즐겼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일 그 시간이 이십년으로 늘어난다면?
포항에 있는 로스터리 카페 '아라비카'는 그 이십년이라는 시간을 같은 주인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의 커피를 내리고 있는 곳이다. 인테리어 조차도 크게 바뀌지 않아 실내는 이십년된 인테리어다.
카페 투어객이라는 인사를 함과 동시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전날 다녀간, 이십년 전 단골에 대한 이야기까지. 외지에 나가 이십년을 정신없이 살다가 사업차 들린 포항에서 젊은날의 단골 가게를 찾았던 그 분이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더라는 그 이야기에서 단지 돈받고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우려내는 푸근함이 느껴지는 장소로 다시금 보였다. 그런 장소에서, 이십년간 커피 하나로 지역민들에게 인정받고 유지되어 온 가게에서 커피 맛이 이렇고 저렇고 이야기 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일 것이다. 그냥, 푸근했다. 또 이랬던 적이 언제였는지 모를 만큼.
지금이야 조금 유행처럼 번지는 취미이긴 하지만 커피라는 것은 커피의 산지에서 시작해 손 끝을 거쳐 마실때의 온도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일정함이 없는 새로움으로 가득한 음료다. 심지어 커피를 내리는 날의 습도에 따라 맛이 달라질 정도니 우리나라 같이 기온이 급변하는 기후에서는 일정한 커피맛이라는 것이 의미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래도 그 중 한결같은 커피맛을 말한다면 포항의 '아라비카' 가 아닐런지.
이번 커피 여행의 마지막은 푸근하고 아늑했다. 아라비카를 마지막 여행지로 선택한 나 자신이 기특하게 생각될 만큼.
남쪽으로 여러곳을 둘러보긴 했지만 아직도 못가본 곳들이 많다. 우리나라 커피의 성지나 다름없는 강릉의 여러 카페들은 자주 들릴 수 있으니 제외한다 쳐도 남양주의 '왈츠와 닥트만', 울산 '빈스톡'(여긴 이제 샵을 안하시니 일반인 자격으로 가봐야...), 경주 '얀', 대구 '커피명가' 등은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들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들려보지 못했다. 그리고 서울지역의 유명한 곳들은 아예 리스트업 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보지 않을까?
차로 이동한 거리만 1,450km 의 나름 대장정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조금 더 커피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정신없이 돌아 다녔던, 하지만 커피향 가득 행복했던 휴가를 이제 마무리 한다. 아직도 내 코 끝에선 달콤한 커피 원두의 향이 남아있는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