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출근

무척이나 조용한 연구실.

투명한 하늘의 일요일이고 일이 있어 연구실에 나와 있다. 일반적이라면 일이 있든 없든 휴일에 출근하는 것이 무척이나 짜증나는 상황이겠지만 난 그렇게까지 짜증나거나 아쉽다거나 하지는 않다. 무엇보다 휴일에 연구실에 나와 있게 되면 고요함을 누릴 수 있다. 음악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스피커로 틀어 놓을 수 있고 또 마음껏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물론 '해야할 일을 어느정도 하면서' 라는 단서가 붙지만.

아침에 조금 뒹굴거리면서 책을 보다가 출근하려 했는데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너무나 맑고 투명해서 곧바로 카메라 가방을 들고 집을 뛰쳐나오듯 빠져 나왔다. 집에서 걸어서 1,2분이면 도착하는 곳에 제법 볼만한 은행나무 길이 있다. 단풍이 너무나도 예쁘게 들었던 작년에 그 길 역시 상당히 볼만 했었다. 그 기억을 갖고 있기에 2006년도에는 꼭 그 길에서 사진을 찍고 말겠다는 나름대로의 결심과 기대로 1년을 지내왔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상고온으로 단풍잎과 은행잎이 물들기도 전에 말라 버려서 예년의 분위기를 맛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기대라고나 할까. 요 며칠은 그래도 비가 적당히 내렸었고 기온도 충분히 내려가고 있기 때문에 오늘은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사실 눈에 보이는 은행나무들은 아직도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많다.

열장하고 서너장을 더 그 길에서 찍었다. 아직도 푸른기운이 남아 있어 다음주 정도면 괜찮아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장전해 놓은 필름에 남아있는 열컷 정도의 여분은 다음주를 위해 남겨둬야 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다음주중에는 학회가 있어 설악산에 다녀와야 한다. 아무래도 남아있는 컷이 다음주말까지 가지는 않을 듯.

디지털 바디가 아니라 찍은 사진을 바로바로 확인해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때문에 필름을 현상해서 스캔할 때까지 기다리는 '설레임'이라는 것이 있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