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in a balanced Life
어제,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이브에, 베이스먼트에 만들어 놓은 내 홈오피스에서 한참을 몰두해서 프로젝트 진행 현황과 문제점들을 정리하고 각 상황에 맞는 test plan을 수립해서 메일로 팀원들에게 보내는 작업을 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5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사실 어제는 원래 휴가였다. 미국에 와서 휴가가 큰 의미가 없어졌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까지 이렇게 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같은 업계 내에서의 이직이었기 때문에 종종 전 직장 동료들과 사적으로 또는 일적으로 연락을 하는데 시차 때문에 밤시간(그러니까 한국은 아침)에 conference call을 하게 된다. 그 때마다 그들이 그런다. "왜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냐, 그러려고 미국 간 거 아니지 않냐" 라고. 그 때마다 "그러게, 먹고 살기 어렵네" 라며 같이 맞장구를 쳐주기는 하나 뒷머리를 긁적일 수 밖에 없는 심리 상태가 되는 걸 피하기 어렵다. 종종 친구들과 연락을 하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 질문이 이상한 건 아니다. 그게 보편적인 시각이니까. 깊이 파고들어 가지 않고 보면, 미국에서의 삶이 훨씬 여유로와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일' 이라는게 생존 경쟁의 다른 형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가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지구촌 어디에 있을까 의문이다. 어디에서든, 삶은 치열하다.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이 한국보다 여유로와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한국보다 절대적으로 짧기 때문. 대부분 야근도 없고, 일이 있으면 일찍 짐 챙겨서 퇴근해도 상관 없다. 내 경우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것도 가능했다(Covid-19으로 이제는 많은 곳에서 보편화 되었지만). 장시간 사무실에서 앉아 있어야 하는 한국 회사와 비교하면 자유로와 보일 수 밖에 없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워라벨을 만끽할 수 있는 환경이랄까.
그런데 내면을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은 이유는 일하는 장소를 크게 따지지 않기 때문. 오히려 집에 와서도, 파티에서도, 침대에서도 일을 손에서 놓기 어렵다. 시간, 장소에 구애 없이 담당자는 항상 일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 사무실에서 일한 것으로 다 처리할 수 있을만큼 일을 적게 주는 회사도 드물다. 결국, 일은 집으로 묻어갈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일찍 퇴근해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그렇게 가족과 시간을 보낸 뒤 다시 랩탑을 켜고 밤 늦게까지 일을 한다. 집에서 하는 야근이라고 하면 어울릴까. 한국에서는 근무시간 이후 업무 카톡이 죄악처럼 취급된다. 다들 그걸 '시달린다' 고 표현하며 퇴근 후에는 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추구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건 그냥 당연한 일상이다. 저녁 시간에 보스에게서 일 관련 메세지가 오는게 특이한 일이 아니다.
물론 일과 삶을 근무시간을 기점으로 분리해서 살아도 크게 상관은 없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기본이다. 미국은 주어진 목표만 정확하게 달성하는 직원에게 연차가 됐다며 더 나은 보상과 승진의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주어진 task만 정확히 해낸다면,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그 사람은 같은 포지션에서 같은 연봉을 받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런 이유로 공부와 일은 하려고 들면 끝이 없다는 말은 이 나라에서 더 가혹하다. 본인이 추구하는게 가정의 경제적인 풍족함과 거기에 따라오는 생활적인 여유와 안정이라면,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내게 주어진 것 이상을 해내야 한다. 그러다보니, 미국에서는 그런 상황에 그리고 일에 매몰되어 자신의 삶이, 가족과의 관계가 손상을 입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노동자의 천국일 것 같은 이곳에서 일적인 스트레스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넘쳐나는 이유.
미국에서 일과 삶의 관계는 일 50%, 일 외적인 삶 50% 를 추구하는게 아니라 그냥 내 삶의 한 가운데 일이 있도록 해야 한다. 일과 삶을 나눠서 생각하는게 아니라, 균형을 잘 잡은 내 삶의 일부분으로 일이 들어와 있어야 한다. 오후 5시까지는 일에 몰두하고 그 이후의 시간은 나 자신의 삶을 위해 사용한다는.. 한국에서 많이 통용되는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 라는 말은 미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개념이다. 워라벨이라는 단어에서 일Work은 내 삶Life 을 방해하는 존재를 뜻한다. 미국에서 일과 삶은 구분되지 않는다.
Work in a balanced life
내가 미국에 와서 깨달은 이곳에서의 키워드. 아이들과 놀아주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정원을 가꾸고,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이웃과/친구와 교류를 하고, 배우자와 커피 한잔의 여유와 대화를 나누는 그런 균형잡힌 삶balanced Life 사이 사이에 일Work 이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일 자체를 내 삶과 동떨어진 것으로 구분지어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고 난 뒤 아이들이 장난감 정리하는 틈에 얼른 이메일을 확인해야 하고, 잠이 안 온다는 아이에게 옛날 이야기 들려주고 나서 몰래 침실을 빠져나와 랩탑을 켜야 한다. 커피를 내리는 짧은 시간에 지금 하는 프로젝트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정원에서 lawn mower를 밀고 다니면서는 보고서의 초안을 머리속으로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회사일에 매몰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솔직히 이게 참 어렵다.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퇴근하더라도 일로부터 해방될 수 없기에 더 가혹한 삶이 될 수 밖에 없으며 적성에 맞아서 일하는게 즐겁더라도 균형을 조금만 잃으면 나는 가족과의 관계도 소원히 하며 하루종일 일만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균형잡힌 생활이balanced Life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은, 그런 life 와 구분지어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life 의 부분이어야 하고.
미국에 워라벨은 없다. 그냥 일이 삶의 일부분인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이 주어지는 사회가 있을 뿐. 그런 삶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개인 몫의 책임은 항상 작지만, 치명적이다.
Work AND Life balance? No. Work IN a balanced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