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장소

"당신 요즘 멋있어 졌어요."


며칠 전, 저녁 준비를 하는 아내 옆에서 점심 먹고 미뤄 놨던 설겆이 거리를 싱크대에서 행궈 식기 세척기에 넣으면서 아내에게 툭 한마디 던졌다. 별 시덥잖은 소리를 한다며 피식 웃는 아내에게 갑자기 뭔가 설명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에 왜 그런지 구구절절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그 상황이 우스워서 "아니, 뭐... 그냥 그렇다구요" 라고 얼버무리고는 똑같이 피식 웃고 말았지만. 

잠시 프라이팬에서 재료가 볶아지는 소리와, 싱크대에서 달그락 거리며 그릇을 씻는 소리가 어울어지며 말 없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내도 알고 있고, 아내가 안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첫째 아이가 항상 궁금해 하는,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것 같다는 엄마 아빠의 시간.


사람마다 어울리는 각자의 장소가 있다. 

형이상학적인 어딘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발을 딛고 살아가는 그런 '장소'. 그리고 아내에게는 미국이 그런 장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는 아이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지낸 탓에 경력이 단절되어 다시 job 을 구하는게 참 어려웠는데(끝내 구하지 못했다) 미국에 와서는 job을 구했다.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말 열심히 하더니 점차 회사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더 많은 일을 하면서 2주에 한번씩 들어오는 pay check의 액수도 빠르게 올라갔다. 그렇게 일하느라 정말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고 대부분의 주말에도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느라 바쁘고 정신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빛과 말투 그리고 행동에서는 거꾸로 여유가 묻어 난다. 몸은 바쁘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너무나 여유로운, 멋있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모습.

지난주에는 함께 식탁에 앉아 내년 가계 운영에 대해 상의했는데 아내의 수입 덕분에 올해보다 여유가 생겨서 아내 명의의 IRA 계좌를 열었다. 아내가 번 돈으로, 아내의 이름으로 된 연금 계좌에 돈을 불입하는건 십년전 아내가 직장을 그만둔 이후 처음이었는데, 속으로 많이 기뻤을 거라 생각한다. 옆에서 보는 내가 다 기뻤으니까. 누가 돈을 버느냐를 놓고 갈등한 적은 없었지만 아내 역시 가치 창출과 대가 지불이라는 방식을 통해 개인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 수입을 만들고 노후를 대비한다는 행위에 대한 갈증은 무시할 수 없었으리라.(개인의 가치를 그런식으로 판단하는게 옳으냐 하는 문제는 차치해 놓더라도.)

미국 넘어올 때는 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내게 의지했었는데 하루 세시간씩 악착같이 영어 공부를 하면서 영어 실력을 키우더니 2년이 지난 이제는 병원부터 시작해서 아이들 학교 선생님과의 대화까지 척척 처리한다. 오히려 현지에서 영어를 공부해서인지 실제 자주 사용되는 어휘나 표현 등은 내가 물어서 배워야 할 만큼 더 정확하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을 만나도 대화가 아이들 교육 문제에 거의 국한되어 있어서 대화가 어려웠다. 우리 부부는 모두 아이들을 이것저것 시키기 보다는 어릴때는 대책없이 놀아야 된다는 주의인데, 나야 다른 사람과 교육 문제를 이야기할 일이 없었지만 엄마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는 한국의 문화에서는 사교육에 관심없는 엄마라는 존재는 상당히 이질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함께 어울리는 무리들로부터 아이를 방치한다는 도 넘은 간섭부터 저 집은 믿는 구석이 있으니 안시킨다는 비아냥까지. 참 여러가지로 어려웠다. 그런데 아내는 미국에서 아이 이야기 말고도 '내가' 관심 있는 일들에 대해 대화하는 친구들을 만들었다. 내가 하는 일은 어떻고, 직장은 어떻고, 요즘 사회 문제는 어떻고 등등... '아이의 엄마' 로써가 아닌 '나' 자신의 공간과, 관심사와, 일을 주제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을. 아이 교육'만' 대화하는게 아니라 아이 교육'도' 대화하는 그런 친구들.


뭐... 둘이 벌지만 경제적으로는 한국에서보다 힘들게 산다. 그러다 보니 아내 역시 한국에 있을때와 달리 여기서는 동전 하나하나 다 계산해 가며 소비할 수 밖에 없다. 좋은 옷이나 가방 사는 건 그게 뭔가요 수준이고 미용실에서 몇시간씩 비싼 손질을 받던 머리카락은 집에서 혼자 거울보며 가위로 커트하는 상황. 그러다 보니 사진을 한 장 딱 찍어서 before / after 비교하면 한국에서의 사진이 훨씬 화려하다. 아내 표현에 따르면 미국 촌년이 되었다고. 그런데, 사진이 아닌 동영상으로 찍어서 비교하면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멋있다. 미국 촌년 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하지만,화려하고 눈부시게 꾸민 과거의 모습보다, 멋진 미소를 띠며 이야기 하는 아내가 나는 더 좋다. 아내의 장소는 정말로 이곳 미국이었나보다.


결혼할 때는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그 지혜로움에 감탄을 했었는데,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 새삼스럽게 아내가 멋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십년 가까이 살았는데 아직도 새로운 모습을 본다. 아니, 정확히는 아내가 새로 만들어 가는 모습이겠지.


그런데... 막상 내 장소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게 어울리는 장소는 도대체 어디일까? 한국에서도 평생을 이방인 같은 느낌으로 살았는데 미국에서도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