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수양
오늘 아침, 식사 준비를 하면서 둘째에게 언성을 높였다. 따지고 보면 정말 별 것 아니고 아이가 잘못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오롯이 내 마음의 편견 때문에 화가 났다. 아침으로 준비한 국을 아이가 먹기 싫다고 거부했는데 평소 가리지 않고 잘 먹던 둘째였기에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다. 아마 편식을 하는 첫째가 싫다고 했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텐데, '둘째는 뭐든 잘 먹는다' 는 내 마음 속 편견 때문에 그 상황에서 아이가 부당한 음식 투장을 부린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화가 났다. 그래도 처음엔 화를 내지 않고 알았다고 했는데, 상황이 거기서 한번 더 꼬였다. 아내가 아이에게 맛이라도 보고 먹을지 말지 결정해보라고 권했고 아이가 그러기로 했는데, 나는 그걸 '일단 오늘 아침은 먹어보고' 로 이해했다. 그래서 국을 떠서 아이 앞에 놓아 줬고.. 아이는 자기는 맛만 본다고 했는데 왜 국을 떠 주냐며 먹지 않겠다고 했다. 있을 수 있는 오해. 그리고 아이 입장에서 당연한 반응.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내 화가 터졌다. 왜 이랬다 저랬다 하냐며. 무릇 모든 분노는 계산되지 않은 상황에서 터져 나오기 마련이지만 아침의 그 상황은 정말 뜬금 없었다. 늘 음식을 가려서 먹는 형과 비교하며 아이가 얼마나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을까. 자기는 정말 딱 한번 싫다고 했다 생각할텐데.
아이에게 이렇게까지 심하게 화를 낸 건 대략 1년만인 것 같다. 아이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 그러면 안된다는 주의를 주는 정도는 있었지만 목소리까지 높여가며.. 거의 소리 지르다 시피 화를 낸 적은... 적어도 최근에는 없었다. 더구나 아이의 잘못도 아닌 일에 내 자신의 짜증이 묻어나 화를 낸 건, 미국에 온 이후에는 없었다. 그러니 오늘처럼 아이에게 화를 낸 건 3년도 더 된 이야기. 자기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다가, 그것도 지난 수년동안 접한 적 없는 아빠의 갑작스런 분노에 아이가 놀랐고 결국 눈물이 터졌다.
굳이 변명을 해 보자면 아이에게 감정을 내보인 건 고작 몇초다. 두마디 했고.
"까탈스럽게 굴지 말고 그냥 좀 먹자!"
"싫어? 그럼 먹지 마!"
..하지만 사실 말에 가시와 분노가 가득했다. 그리고 분노는 입 밖으로 흘러 나오는 표현보다 분위기에 더 독성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기분을, 불안이든 분노든 기쁨이든, 즉각적으로 안다. 아니, 전염된다고 표현하는게 맞겠지. 아빠의 분노가 덮어버린 아침 식탁은 내가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 까지도 어둡고 무거웠다.
출근해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잘못한 일이고 음식을 가린다는 같은 문제에 대해 첫째에게는 평소 뭐라고 하지 않으면서 단순히 '둘째는 잘 먹는다'는 내 마음속 편견에 어긋난다고 화를 낸 일은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 상의하니 '그럴 수도 있지요 뭐' 라며 별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회신이 왔는데,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아내는 항상 내게 관대하다. 지나칠만큼. 어떻게 별 일이 아닐수가 있나. 온 가족 앞에서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고 떼를 쓴 건 둘째가 아닌 나인데. 부모라고 해서 성인군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자녀에게 찌질한 부모는 되지 말아야 할 텐데 어떻게 나이가 들어도 이토록 성장하는게 더딘지 모르겠다. 정신수양을 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어쨌든 퇴근길에 둘째가 좋아하는 베리가 가득 토핑된 케이크라도 하나 사가야겠다. 케이크 좀 먹여 놓고 눈치 봐서 사과해야지.